◎생필품난 가중속 암시장 활개/“봉급만으론 못산다” 막일 나서/시민들 “구체제보다 좋아지겠지” 막연한 기대감모스크바 불쇼이극장앞 광장에 서있는 카를 마르크스석상에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러나 요즘은 지난 8월 쿠데타직후 누군가가 석상에 페인트로 칠한 「나를 용서해 달라」는 글씨가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소련의 소멸은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일종의 허무감을 느끼게 하는듯 어느 누구의 표정도 밝지않다. 게다가 전혀 새로운 시장경제의 경험도 두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소련인들의 월평균 임금 3백루블이 국제금융시세로 환산하면 단돈 2천원 밖에 안되는 현실. 이 처참한 상황이 소련의 현주소인 것이다.
불과 10일전 1대 90이던 미국달러화대 루블화의 환율이 현재 1대 1백10을 웃돌고 있다. 현지 전문가들은 환율이 1대 1백50까지 치솟을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때문에 모스크바인들 사이에선 『모스코비치들은 루블에 그려진 레닌보다 달러의 워싱턴을 더 좋아한다』는 비아냥섞인 농담이 나돌 정도다.
○“워싱턴이 더 좋아”
환율이 이지경이니 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수 밖에 없다.
신년 파티를 위해 소련인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샴페인 한병이 1백50루블로 엄청나게 뛰었다. 국영상점의 정가는 12루블이지만 보다 나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한 물건이 선반에 오르기전에 사라지고 만다.
모스크바시내 상점서 품귀사태를 빚고 있는 마요네즈도 상점앞 노상의 자유시장에서는 버젓이 유통된다. 단 44코페이카(1루블은 1백코페이카)였던 가격이 10배 이상 뛴 5루블에 거래된다.
따라서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의해 분배받는」 사회주의의 대원칙은 이미 깨진지 오래다. 능력의 자유경쟁이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막일에 뛰어드는 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 과학연구소의 상임연구원이며 물리학박사인 블라디미르씨는 가격안정 상한에 매여있는 1천30루블의 급료만으로는 아내와 단둘이 지내기도 힘들어 과외로 자가용영업을 하고 있다. 전문직이나 해외로 나갈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조국을 떠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컴퓨터공학 등 소련의 과학분야가 서방에 현저히 뒤처진 점을 알기에 엄두도 안난다』고 답했다.
○과외로 자가용영업
현재 모스크바거리에서는 자가용영업을 하는 또 다른 「블라디미르」씨를 수 없이 발견한다.
값싼 국영상점에 늘어선 긴 줄속에서도 이런 행태는 발견된다. 대개 시간적 여유가 있는 연로한 사람들의 경우 3∼4시간을 기다려 손에 쥔 물건을 자유시장서 좋은 가격에 되팔아 부족한 연금에 보탠다. 이로인한 매점매석으로 시내의 생필품부족이 가중되고 있다는 비난이 일 정도다.
자본주의의 「묘미」에 눈뜨기 시작한 소련인들에게는 모든게 「시장의 대상」이다. 심지어 소련의 문화적 긍지인 볼쇼이극장앞에는 입장객보다 암표상이 더많이 설친다. 시내의 예매처마다 매진된 4∼8루블짜리 볼쇼이티켓이 이곳에서는 25루블서부터 1천루블 이상인 10달러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의 가격에 팔린다. 문제는 아직 수요와 공급의 접점이 이루어지지않아 입장해보면 빈자리가 많은게 안타까울 뿐이다.
○암표가격 천차만별
신년부터 시행되는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전면가격 자유화조치는 이를 현실화시키는 것 뿐이라는게 현지전문가와 언론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가격자유화를 『정부가 그간 불법시해온 상거래에 자유를 줬으니 다음은 시민 각자가 알아서 행동해야 한다』는 정책이라고 정부의 무성의를 비판한다.
사실상 자본주의 경험이 전무한 정부 역시 뚜렷한 일정은 없어 보인다. 강단있는 지도자인 옐친 대통령이 『내 재임중 생활형편이 나아지지 않으면 날 기차레 일위에 묶어 놓아라』고 공언하는 것처럼 비전만 제시해줄 뿐이다. 한 예로 현재 1㎞당 40코페이카인 택시요금은 오는 1월1일부터 5배가 오른 2루블로 인상된다. 하지만 월 5백루블인 택시운전자의 급료는 얼마가 오를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 운전사는 말했다. 그때가서 검토하자는 말이 회사로부터 들은 답변의 전부였다고 그는 덧붙였다. 다른 대부분의 직책들도 마찬가지다.
○미래계획 엄두못내
따라서 대다수의 소련인들은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새해가 돼도 신년포부 하나 밝힐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이 불안을 가중시킨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한가지 있다. 어설픈 출발이지만 사라진 구체제보다는 분명히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이다.<유석민특파원>유석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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