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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도 녹여내는 신도시건설 열기/새벽이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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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한도 녹여내는 신도시건설 열기/새벽이 붐빈다

입력
1991.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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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버스속 시멘트배합 걱정/해뜨기전 인원·작업점검 필수신도시 분당 건설현장의 새벽은 곳곳에 모닥불이 피어오르면서 활기를 띤다. 어둠속을 달려온 기능공들은 새벽 추위에 얼어 붙은 몸을 모닥불로 녹이며 공구를 챙기고 주변을 정리한다. 어슴프레 날이 밝자마자 작업을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어둠속에서도 꾸물댈 틈이 없다.

겨울철의 새벽은 더욱 바쁘다. 기온이 낮아지면 시멘트가 더디 굳어 작업속도가 떨어지는데다 해도 짧아 작업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27일 새벽6시께,서울 잠실 롯데월드 주변엔 분당 현장으로 가는 수십대의 통근버스가 줄지어 서 있고 버스를 놓칠세라 종종걸음을 치는 기능공들로 붐볐다.

K건설 현장에서 목공일을 한다는 이준학군(19)은 버스를 찾지 못해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지난 5월부터 분당에서 일해온 이군은 현장숙소에서 지내지만 성탄휴일을 서울에서 지내고 출근하는 길이었다. 이군은 『새벽밥을 먹고 일을 하기 때문에 무척 힘든다』면서도 『이젠 적응이 돼 군입대까지 계속 해볼 작정』이라고 말했다.

방수기능공으로 L개발에서 일하는 문모씨(45·여)는 새벽4시30분이면 일어나 식구들을 위해 아침밥을 지어 놓은뒤 6시께 집을 나선다. 문씨는 평소 보다 10여분 늦게 도착했는데도 9인승 승합차에 운전사 혼자 졸고 있자 『이 양반들 어제밤에 과음을 한 모양』이라며 하루일을 공칠 동료들 걱정부터 했다.

새벽길이라 분당까지는 30분 남짓. 잠실에서 꼬리를 물고 달려간 차량들이 분당을 흔들어 깨우는 것이다.

K건설·C주택·B건설에 조적공을 공급하는 김모씨(29)는 새벽4시30분에 일어나 기능공 10명과 함께 도착했다. 아직 온통 진흙판인 건설현장을 승합차로 돌며 3∼4명씩 내려준뒤 현장사무소를 찾아가 인원점검표를 제출했다. 건설일은 하루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인원과 작업량을 그날그날 점검해야 한다. 김씨는 출근길에 주의사항 등을 단단히 일렀지만 작업이 시작되면 현장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기능공들의 작업진행 상태를 챙겨야 한다.

아직 어둠이 걷히지 않은 7시께 이날 일할 작업장에 도착한 조적공 모연환씨(42)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려면 30여분이나 남았지만 쉴 틈이 없다. 시메트에 모래와 물을 섞어 잘 이겨놓고 공구도 챙기는 등 해가 뜨자마자 작업을 하려면 단도리를 잘 해두어야 한다.

분주한 발걸음 속에서도 몇몇 기능공들은 빈터에 지펴진 모닥불에 손을 쬔뒤 다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현장사무소의 관리직원들도 7시면 모두 출근한다. 새벽부터 트럭에 실려 오는 자재를 확인하고 그날의 작업진행 계획을 세워 각 공정마다 작업량을 지시해야 한다.

C주택 기사인 연정흠씨(28)는 6시40분 잠실에서 통근버스를 탄다. 사무실에 도착하면 10여분간 작업구상을 하고 바로 작업복에 안전모 차림으로 자신이 맡은 아파트 2개동 30개층을 모두 둘러본다.

서둘러 아침식사를 마치고도 여유는 없다. 협력업체 사장들이 낸 출력인원 서류를 점검,보고하기 바쁘게 다시 현장을 돌며 하자점검에 들어간다.

현장기사에게 아파트 건설은 예술가의 작품과도 같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짓는 건물이니 소홀할 수가 없고 그만큼 애정도 깊다. 연씨는 『새벽 출근에 휴일도 없는 고된 일이지만 역동성을 느낄 수 있고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건설현장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드디어 어둠을 녹이며 해가 돋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타워크레인이 거대한 몸체를 움직이기 시자했다. 타워리프트가 철컥이며 쉬지않고 아파트 꼭대기까지 오르내린다. 철근을 다듬는 둔탁한 망치소리가 울려 퍼진다. 자갈과 골재를 실은 트럭들이 쉴새없이 달려오고 있다. 분당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다.<이희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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