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경찰서에 의해 27일 공갈,강도예비음모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전화협박범 권재윤씨(27)는 5개월전까지도 많지 않은 봉급을 떼어 착실히 저축하던 평범한 은행원이었으나 사업을 하려고 퇴직하면서 헤어날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권씨는 사채를 얻어 경남 거창의 2천만원짜리 야산을 사들이고 증권에도 2천만원을 투자했다. 퇴직금으로는 차량도난방지기가게를 차렸다.그러나 때맞춰 주가가 폭락하고 생명력이 짧은 도난방지기는 더 나은 제품에 밀려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되팔려고 내놓은 야산도 사려는 사람이 없어 매달 1백20만원의 사채이자를 제때 갚지 못했다. 다급해진 권씨는 국교동창인 박두규(26)·김명철씨(28)와 함께 은행을 털기로 하고 1백50개지점 목록을 만들었다.
청계천골목에서 가스총 만능열쇠 쇠톱 등 범행 도구를 구입한 이들은 지난 11월중순 비교적 변두리인 서울 S은행 장위동지점을 노리고 현장까지 갔다가 자신들의 보잘것 없는 장비와 배짱으로는 도저히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한탕」을 포기했다.
다음으로 생각해낸 것은 전화협박. 고급승용차를 몰고 젊은 여자와 대낮에 호텔을 드나드는 한량들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30여명을 협박해 뜯어낸 돈은 3백만원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달 15일에는 서울 삼풍백화점에 꽃뱀 5마리를 풀어놓고 『2천만원을 내놓지 않으면 또 뱀을 풀겠다』고 협박전화도 해보았지만 꽃뱀이 겨울에는 움직이지 않아 소득이 없었다.
은행대신 은행지점장,증권사 지점장을 털기로 한 이들은 연하장을 보낸다고 속여 주소 등을 알아낸뒤 동사무소에서 가족사항까지 확인,전화를 걸어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족몰살」 협박에도 돈은 1백만원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권씨일당은 26일밤 D은행 여의도지점장에게 8번째 협박전화를 하다 잠복중인 경찰에 붙잡혔다.
열심히 살려고 그만큼 애썼다면 가상했을 범죄행각의 허망한 종말이었다.<이태희기자>이태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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