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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탁 결식노인들에 「사랑의 쌀」 도시락 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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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탁 결식노인들에 「사랑의 쌀」 도시락 온정

입력
1991.1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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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복지관 매주 목요일 마련/달동네 찾아 직접 배달도/각계서 후원 줄이어/일손마다 흥이 절로매주 목요일이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의 온정과 봉사가 담긴 사랑의 쌀도시락 26일 하오 1시께 1백20명의 노인이 따뜻한 점심을 들고있던 서울 보라매공원내 시립남부노인종합복지관 사랑의 쌀밥식당 맞은편 방에선 자원봉사자 20여명이 도시락싸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정현숙씨(40·강남구 청담1동 105)가 이끄는 꽃꽃이모임인 정현희 회원 주부 8명과 김복순씨(67·경기 광명시 하안동 하안 5단지 아파트 508동 609호)가 대장인 노인자원봉사대 할머니 10명은 사랑의 쌀을 정성껏 씻어 밥을 안치고 새벽시장서 사온 반찬거리를 다듬었다.

지난 6월8일 쌀밥식당을 열어 많은 결식노인들의 허기를 달래주었지만 거동이 불편해 오지못하는 무의탁 노인이 마음에 걸린 자원봉사자들은 고민끝에 11월초부터 매주 목요일 도시락을 만들어 신림7동 신대방 1·2동 봉천7동 중계2동 달동네의 무의탁노인 70명에게 직접 전해왔다.

주머니 돈을 털어 밑반찬을 장만하는 자원봉사자들은 많은 후원자들의 특별메뉴와 음료수 지원을 받고 있다.

(주)삼호물산에선 삼호어묵과 닭고기,도시락을 담을 예쁜 종이가방을 보내오고 멀리 경기 원당에서 나영수목사가 꼬박 꼬박 달걀 60개와 닭 15마리를 챙겨준다.

올해 마지막 도시락을 싸는 이날은 삼호물산 여직원 모임인 가인회에서 일일찻집 수익금으로 내복 60벌과 애플파이를 보내온데다 멕시칸치킨사가 도시락 용기값을 부담하고 닭고기도 보내주겠다고 알려와 일손에 흥이 났다.

봉사자들은 그동안 정든 노인들이 전기밥솥을 사주겠다고 해도 『전기료 낼 돈이 없다』고 거절한 얘기와 냉방에 스티로폴을 깔고 라면으로 연명하는 얘기를 나누다 또 눈물을 흘렸다.

하오 3시30분께 도시락 장만이 끝나자 중계동 재개발 지역에서 「평화의 집」이라는 민간복지시설을 운영하는 한남대 행정학과 임춘식교수(44)의 승용차가 도착했다.

임 교수가 자기 몫인 도시락 20개를 중계동까지 실어나르면 뜨거운 물을 끓여놓고 기다리던 자원봉사자 10여명이 곧바로 노인들에게 배달하는 것이다. 임 교수는 『차기 밀려 도시락이 식어 갈 때는 미칠 것만 같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관 베스타승합차 편으로 봉천동팀이 떠나고 마지막으로 정현숙씨의 승용차에 김복순할머니가 도시락을 들고 탔다.

신림7동 낙골마을 20명에게 거미줄같은 골목골목을 돌며 도시락을 전달하는 일도 보통이 아니다. 도저히 길을 기억할 수가 없는 정씨 등을 위해 남부경찰서 신림7파출소 전규상경장(36)이 길안내를 맡아주고 있다.

하오 4시15분께 이들이 번지수도 알수없는 한평남짓한 골방의 유광원(80) 김옥순(79) 내외를 찾아가자 두 노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또 오셨군』이라는 말을 간신히 하고는 목이 메어버렸다.

바깥출입을 거의 못하는 70명의 노인에게는 도시락을 갖고 찾아 오는 이들이 유일한 바깥세계와의 접촉인 셈이다.

하오 5시께 배달을 마치고 복지관으로 돌아온 봉사자들은 내년 첫 목요일인 1월2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지며 더많은 후원으로 더많은 노인들을 도울 수 있기를 기원했다. 복지관 원성춘 사무국장(58)은 『사랑의 쌀을 기다리는 많은 이들을 볼때마다 안타깝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여든여덟번 농부의 손길로 자란 벼가 도정돼 많은 이들의 성금으로 사랑의 쌀로 바뀌고 다시 정성스런 도시락이 되어 노인들 방에까지 찾아가는 과정에서 함께 사는 사회가 이룩돼가고 있다.<신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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