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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시대 떠받치는 트로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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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친시대 떠받치는 트로이카

입력
1991.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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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사무장맡은 심복/부르불리스/경제·개정분야 브레인/가이다르/정변때 미 접촉 외교통/코지레프크렘린의 새 지도자로 부상한 옐친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는 새로운 실제에 대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옐친은 지난달 7일 러시아공화국 정부각료를 30∼40대의 젊은 엘리트로 대폭 교체했다. 최고권좌로 가기 위한 그의 친정체제 구축작업이었다.

이때 입각,옐친진영의 실세로 자리를 굳힌 인물들이 겐나디 부르불리스,예고르 가이다르,안드레이 코지레프 등으로 이른바 「옐친트로이카」로 불린다.

이들 세사람은 강한 슬라브민족주의를 바탕으로 러시아공화국의 자본주의시장 경제이행을 주요 정책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정책과 실현을 위해서 「옐친 트로이카」는 러시아공화국 최고의회를 발 빠르게 장악,러시아공내 공산주의 잔재를 청산하는 한편 소 연방의 약화를 도모해왔다.

이들은 또한 소 연방의 붕괴를 불러온 독립국가 공동체 창설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겐나디 부르불리스◁

옐친의 심복으로 옐친과 불화가 잦은 알렉산데르 루츠코이 부통령에 다음가는 러공 정부내 서열 제3위의 지도자. 지난달 7일 정부기구개편때 연방국가평의회 사무국장에서 러공 제1부총리로 취임했다.

지난 5월말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직선에서 옐친의 선거사무장을 맡았던 「옐친의 오른팔」로서 러시아공 정부조직인사에서 「자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권한이 막강한다.

1945년 옐친과 같은 고향인 스베르들로프스크(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우랄대에서 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러공 최고회의 대의원이 되기전까지 스베르들로프스크대에서 공산주의 이론을 가르쳐 왔다.

옐친의 「인의 장막」으로 알려진 「스베르들로프스크 마피아」의 우두머리격으로 지목되고 있는 부르불리스는 반대파로부터 「옐친독재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독립국가 공동체안이 부르불리스의 아이디어였다고 비난한바 있다.

▷예고르 가이다르◁

지난 11월 부르불리스와 동시에 러공 경제담당 부총리로 입각했다.

그는 실라예프 연방총리가 옐친의 독단적인 행동에 비판을 가하던때 「연방진영」에 동조한적이 있으나 옐친 경제정책의 주요 골격인 「아르한겔스크 플랜」을 수립하는 등 경제·재정분야에서 옐친의 싱크탱크역을 맡고 있다. 부르불리스 직속계보 소속으로 알려진 가이다르는 모스크바 경제정책연구소장을 지낸 올 35세의 신진경제학자다.

▷안드레이 코지레프◁

국제관계대학에서 연방외무부로 발탁됐던 외교엘리트로 현재 러시아공화국 외무장관이다. 40세의 나이로 연방외무부에서 국제조직부장을 담당하고 있던 8월 쿠데타 당시에는 옐친의 밀명을 받고 망명정부수립 계획안을 소지하고 도미,부시 대통령의 협력을 촉구했었다.

한편 옐친은 트로이카 이외에도 출중한 인적자원을 곁에 두고 있으며 이중 블라디미르 루킨이 돋보인다.

루킨은 러공의 국제문제 및 대외경제관계위원장으로 옐친이 가장 신뢰하는 외교고문.

그는 고르바초프의 싱크탱크였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와 연방외무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김영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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