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동서통일」 아직은 멀다/일방적 「정화」·임금등 차별/동독인들 “2등 시민” 반감/본사 이재승 논설위원 베를린 르포동독인들 사이에는 넓게 불만이 형성돼 있다. 스스로 선택한 흡수통일이나 흡수과정에서 동독인들이 「2등시민」으로서 전락되고 있다는 의식에서 나오는 집단적 반감이다. 동독인들은 체제전환에 따라 무더기로 공직자들이 축출됐을 뿐아니라 경제의 구조조정 및 침체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잔류 공무원과 근로자들의 급료가 차등화,서독수준의 60%에 불과하다. 정치·경제·사회·교육·군 등 모든 분야에서는 책임자는 서독인이다. 과도적이기는 하나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가 서와 동아시아에 성립돼가고 있다. 동·서독인들 사이에 깊은 의식의 골이 생겨가고 있다.
동독인들을 민감하게 자극하는 사건이 주요 현안으로 남아있다. 하나는 동독 제1의 명문대학교 훔볼트 대학교의 핑크총장(신학전공) 해임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서독 탈출자를 발포,사살한 전 동독경비병 3명에 대한 살인죄의 기소다. 핑크 총장의 해임은 슈타시(국가보위부 비밀경찰)와의 협력문제가 관련된 것이다. 통합조약에는 슈타시의 종사자들과 이에 협력했던 사람은 통일독일의 공무원 자격에서 우선적인 감원사유가 돼있다. 문제는 「협력」의 범위와 성격이다. 동독의 호네커 체제는 여타 공산체제와 마찬가지로 비밀경찰이 무소불능이었다. 동독공산 체제에서 크건 작건 책임있는 자리에 앉았던 공직자는 원하든 원치않든 제도적으로 비밀경찰과 협력하게 돼있었다는 것이다. 예를들면 대학교수의 경우 학생들의 해외유학이나 해외여행시 정부규정에 따라 학생들의 정처성향에 대해 해외여행을 해도 좋은지 평가하게 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학생 평가는 바로 비밀경찰의 요구에 의해서 제출토록 규정됐고 실제로 그들이 관장해왔다. 이처럼 업무상 불가피한 비자발적인 사무적 「협력」까지 단죄돼야 한다면 누군들 체벌을 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훔볼트 대학교의 헬가 피히테아시아문학 과장은 『당국이 슈타시와 협력한 것이 밝혀졌다는 것만 갖고 본인에게 한마디 통보도 없이 핑크 총장을 해임했다』며 『이것은 해임의 정당성 문제에 앞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처사다』라고 분개했다. 한국어가 유창,독일 할머니보다는 한국 할머니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주는 피히테 교수는 『이 대학교에서 학부장이나 부학부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슈타시와 관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며 『총장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다』라고 했다. 피히테 교수(56)는 동독에서 처음으로 「조선어」를 연구한 개척자. 김일성 대학교에 2년동안 유학했고 김일성의 동독방문시에는 동독측 통역을 맡기도 했다. 피히테 교수는 흡수통일 과정에서 책임자들은 점검없이 수용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고 말하고 훔볼트대에서도 90년 핑크 총장 취임이후 자가정화를 단행,학부장 등 보직교수 가운데 당원을 제거했다고 했다. 그는 핑크 총장이 슈타시와 관련돼 있다고 하는데 관련됐다는 기록 그 자체만으로 해고하는 것은 부당하며 증거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 독일에는 지금 공포의 판도라 상자가 있다. 동독인 6백만명에 대한 슈타시의 비밀기록이다. 전 동독인의 3분의 1에 상당하는 것이다. 이 기록들이 통독후 독립적인 기관에 넘겨졌는데 구동독 체제 아래서의 행적을 조사하는데 주요 자료의 역할을 한다. 이 개인자료가 공표되면 누가 누구를 밀고 했거나 음해했는지가 드러나 사회전반에 걸쳐 인간관계에 일대 파란이 일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피히테 교수에 따르면 구동독의 엘리트들은 흡수통합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체제내에서의 민주화를 희망했다.
동독체제가 모든것이 나쁜것이 아니다. 좋은 것은 유지,발전시켜야 하는데 핑크 총장이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고 바로 이 때문에 해임된 것이라고 했다. 피히테 교수는 흡수통일을 주도하는 서독정부(연방정부)의 제반조처에 대해 지나치게 일방적이라고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서독측은 동독인들에게는 시장경제의 전환능력이 없다고 평가한 것 같은데 동독인들이 모든면에서 새로운 적응방법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 동독인의 대량 해고. 임금차등(서독 근로자의 60%) 등도 동독인에 대한 인간적 존업을 무시한 것이다.
또한 국영회사의 갱생보다는 매각에 역점을 두고 있는 정책이 필요이상 큰 실업을 발생시키고 있다고 했다.
구동독 공산당의 후신인 민사당의 한스모드로 연방하원 의원도 국영회사 전면 매각정책을 비판했다. 같은 민사당의 레지나 러지 베를린 시의원도 동·서독의 불평등에 강한 불만을 제기했다. 베를린시의 버스는 같은 코스를 운행하는데 구동베를린 버스 기사들이 서베를린 동료들의 60%밖에 월급을 받지 못하는 것은 시정돼야 한다고 했다. 평등의 원칙을 확립할 것을 주장했다.
구동독 경비병의 문제에 대해서는 서독인들도 섣불리 의견을 내놓지 않는다. 단순한 명령복종이므로 명령자인 호네커를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는 주장과 살인행위인 것이 입증되면 처벌돼야 한다는 주장이 살인행위인 것이 입증되면 처벌돼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 있다. 다같이 「역사의 비극」이라는데는 같은 목소리다. 당국도 지나치게 뜨거운 문제라 재판을 미루고 있다. 분단 반세기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공산체제의 붕괴로 그 체제의 광범한 기득권층은 물러날 수 밖에 없다. 체제전환에는 역사의 희생자가 나오게 돼 있다. 일반 국민들도 새 체제로의 적응에는 땀과 불만이 따르게 된다. 마르크화의 위력만 갖고 하룻밤 사이에 동독인들을 서독인화 할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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