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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특파원 모스크바 현지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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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민특파원 모스크바 현지르포

입력
1991.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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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암시장엔 없는게 없고/국영상점 「줄」은 더 길어져/가격자유화 노린 출하기피도 한몫/가격차이는 10배 이상/“시장경제 이미 현실로”/유통망 마비… 산지선 썩어들기도모스크바치(모스크바 시민)들의 올겨울나기는 유난히 어렵다. 다행히 예년보다 추위는 덜한 편이지만 연방체제와 시장경제 전환에 따른 혹독한 과도기 과정이 이들을 더욱 춥게한다.

농담 좋아하는 모스크바 사람들은 모든 상점들이 「섹스 숍」이 됐다고 말한다. 거의 모든 상점의 선반이 벌거벗은 채 맨몸을 드러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텅 비어있는 상점마다 언제올지도 모를 생필품을 기다리는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소련에서의 줄서기는 비단 오늘만의 현상은 아니다. 하지만 이전보다 두세배 길어진데다 허탕치기가 일쑤다. 이 때문에 열지어선 사람들의 표정에는 분노가 가득하다. 또 이모든 상황이 그룻된 경제정책때문이라는 생각에 위정자들에 대한 불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모스크바에서 대중정론지로 자리를 굳힌 네자비시마야 가제타(독립신문)에는 이들이 토로하는 온갖 불평 불만이 날마다 한면을 가득채운다. 18일자에서 한 독자는 『상점문이 보이지도 않는 긴 줄의 뒤편에서 사고자하는 해바라기씨 기름냄새만 맡다 빈손으로 돌아왔다』며 정부(러시아)의 무대책을 호되게 성토했다.

그러나 이같은 현상은 굶주림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것 같다. 모스크바에서 한창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물품은 버터 설탕 우유 채소류 등인데 이들을 대체할 치즈 잼 등은 넉넉히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커피에 넣을 설탕이 없어 잼을 타고 적절한 재료가 없어 음식의 구색이 맞춰지지 않아 아우성이다. 즉 식탁의 폭이 좁아지고 생활의 질적하락이 문제인 것이다. 한 예로 긴줄이 늘어선 국영 빵 상점 한켠에는 소련 고유의 딱딱한 흑빵(초즈니)이 고스란히 쌓여 있으나 사람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은채 저마다 부드러운 흰빵(베르니)을 찾고 있다.

『왜 흰빵만 찾느냐』는 물음에 『맞이 있으니까』라고 간단히 답변한 50대 아주머니는 『흑빵은 집에도 많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식량품귀 부족현상은 연방해체와 중앙계획 경제붕괴에 따른 유통망의 마비가 주원인이다. 예년 작황에 비해 곡물생산이 30%감소한 흉작탓도 있지만 단일통제하에 각 지역특성에 맞춰 운영되던 산지가 제각기 떨어져 나갔기 때문이다. 소련 전역에 방영되는 채널1 TV방송은 유통망 마비와 관련,다음과 같은 장면을 소개했다.

대부분 러시아공화국에 소재한 유전에서 나온 디젤오일과 휘발유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아 운송트럭을 움직이지 못하는 우크라이나 공화국의 농민들이 썩어가는 우유를 그대로 쏟아붓는 모습이다. 매사가 이런식의 악순환이다.

여기에는 새로운 공동체에서 정치적 지분을 넓히기 위한 각 공화국들의 계산된 「자원무기화」의 속셈도 깔려있다.

게다가 새해부터 개시될 전면 가격자유화를 앞두고 방출자체를 꺼리는 산지인들의 손익계산도 한몫한다.

귄위적 중앙집단이 와해된 상태에서 어느 구누하나 이들에게 강제적 행정조처를 취할 수 없는 실정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미 가격경쟁에 의한 시장경제 체제가 기능하기 시작한 셈이다.

이런 상황은 이미 모스크바 곳곳에 번성하는 자유시장 속에서 잘 드러난다. 이곳에서는 국영상점에서 흔적조차 볼수 없는 채소 설탕 등이 수북히 쌓인채 손님을 기다린다. 산지 직송이거나 중간상인을 통해 올라온 물품들이 즉석에서 흥정을 벌여 자연스럽게 가격이 매겨진다.

철저한 가격통제하의 국영상점보다 대부분 10배이상의 시장가가 형성되지만 꼭 필요한 물건이라면 여기서 구입할 수 밖에 없다.

현지 일간지들의 고정물인 「오늘의 시세」란을 통해 그중 가장 값싼 곳을 찾을 수 있는게 소비자들의 유일한 선택이다.

이로써 소비자는 적정가격 형성이라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스스로 빨려들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개인의 「주머니경제」 사정이다. 생필품 가격의 엄청난 인플레와 생활의 질적하락으로 인해 모스크비치의 올겨울 체감온도는 더욱 낮다.

때문에 자본주의 속성에 덜 익숙한 이들은 자유시장이나 거리의 상인들을 서슴없이 「마피아」라고 부른다.

이런 시민들의 누적된 불만으로 인해 위기감은 지속되지만 그다지 크지는 않아 보인다.

모스크비치 대부분이 미래를 위해 어느정도의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각오는 단단하다. 시당국도 민생고 시위가 일어날 것으로 우려는 하고 있으나 산발적 소규모일뿐 폭동양상으로 진전되지는 않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일요일인 23일 모스크바에서는 3천여명의 공산주의자들이 자본주의 도입과 연방해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시위대를 본체만체하고 지나쳤다.

그러나 문제는 비교적 경제적 여유와 유통망이 잘 갖춰진 모스크바 등 대도시 보다는 도로사정이 열악한 원동의 소도시들이다. 이를 의식한 옐친 러시아공 정부는 서구 식량원조물자중 일정량을 비축해 사태발발시 즉각 투입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

내년 중반 현재의 시장경제 이행과도 기간이 어느정도 정착될때까지는 이같은 응급책으로 버틸 수 밖에 없다는게 현 정부가 갖고있는 유일한 복안인듯 하다.

새해 1월1일부터 자본주의의 전환을 위한 충격요법을 시도하겠다는 것이 옐친의 계획이지만 정부건 시민이건 그 실효성에 대해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시장자본주의의 출범국답게 시장경제의 기초원리인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은 손」 안에 모든게 내맡겨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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