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꺼번에 몰려 선채식사 “예사”/자취직장인이 주고객/단골끼린 친구되기도지하철역구내 간이음식점은 새벽 손님으로 붐빈다.
교통난속에 갈수록 빨라지는 출근시간 탓에 아침식사를 거르기 일쑤인 샐러리맨들은 지하철 개찰구를 빠져나오자 마자 간이음식점에 들러 김밥·우동 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한다. 다른 식당과는 달리 새벽에 문을 여는데다 싼값에 빨리 먹을 수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만남의 광장에 있는 5곳의 간이음식점은 역주위에 대기업체 사옥이 밀집해 있어 새벽마다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23일 상오7시께 한 간이음식점에는 혜화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 내린 D산업 사원 김창훈씨(28)가 조간신문 뭉치를 옆구리에 낀 채 호박죽으로 간밤에 과음한 속을 달래고 있었다. 혼자서 자취를 하기 때문에 새벽에 식사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어 1년전부터 한달에 보름정도 이곳에서 끼니를 때우는 단골이다. 김밥·샌드위치·햄버거·우동·단팥죽 등을 번갈아 먹는다.
김씨는 『먹기가 간편하고 시간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다』며 『같은 빌딩내에서 일하면서도 모르고 지냈던 다른 회사직원들도 이곳에서 자주 만나다보면 자연스레 친구가 된다』고 털어 놓았다.
바로 이웃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오던 안상수씨(27)는 이달초 S증권에 입사한 신출내기이지만 회사연수를 거치면서 이러한 출근 문화를 배우게 됐다. 자가용도 없고 아침을 챙겨줄 가족도 없고 한가하게 식사를 즐길 시간도 없는 신입사원의 「3무시절」을 지하철을 타고 이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견뎌내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이 고향인 안씨는 분식으로 이른 식사를 할 때면 서글프기도 하지만 「도시의 직장인」이란 자부심도 느낀다.
이렇듯 대부분 미혼직장인들이 간이음식점을 찾지만 기혼자들의 이용도 늘어나고 있다.
모화재보험에 근무하는 홍석범씨(34)는 둘째아이가 태어난지 채 백일도 되지않아 밤새도록 아기시중에 시달리는 부인을 위해 아침식사를 이곳에서 해결하고 있다. 홍씨는 『첫째아이 출산때도 마찬가지였다』며 『총각이 아니더라도 나같은 애처가는 당연히 이러한 곳을 찾게 된다』며 웃었다.
경기 부천역에서 전철을 타고와 시청역에 내린 이경미씨(26·여·회사원)는 개찰구 옆 음식점에서 샌드위치 한개를 받아든 뒤 돈을 건네자마자 역 출구를 향해 종종걸음을 쳤다. 이씨는 『출근부에 도장부터 찍고 아침먹을 시간을 내야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지하철 역구내에 있는 간이음식점은 줄잡아 50여곳. 새벽부터 한꺼번에 손님이 몰아닥쳐 출근시간이 끝날쯤인 상오9시께면 벌써 한산해 진다. 그러나 가게마다 짧은 시간에 1백∼1백50명의 손님을 치른다.
1천원 안팎의 간단한 식사지만 이를 준비하기 위해 종업원들은 새벽6시 이전에 문을 열어야 한다.
을지로입구역 구내 음식점에서 4년째 일하고 있는 홍정순씨(41·여)는 『이른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기 때문에 무척 힘들다』면서도 『이곳을 찾는 손님들이 대부분 사회에서 촉망받는 엘리트사원들이라 이들을 위한다는 자부심도 크다』고 말했다.
시청역 구내의 「H스낵」에서 일하는 박소란양(22)은 D대 3학년인 아르바이트생.
박양은 『정신없이 손님을 치르다 보면 나도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새벽세계에 동참하고 있다는걸 느낀다』며 『얼마나 바쁜지 들어서자 마자 「제일 빨리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 손님들의 심정을 알게 되었다』고 웃었다.
간이음식점과 함께 역구내에서 새벽에 붐비는 곳은 약국들. 시청역 구내 Y약국 주인 유병철씨(58)는 『새벽부터 아침출근시간까지에만 50여명의 손님이 찾는다』며 『대부분 숙취를 풀기위해 드링크류나 간장약을 찾는다』고 말했다.<고태성기자>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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