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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공화국」/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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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렘린 공화국」/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입력
1991.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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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을 「크렘린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바로 이 크렘린으로 상징되는 소비예트사회주의 공화국연방(소 연방)이 막을 내리려 하고 있다. 1922년도 다 저물어가는 12월30일에 열린 제1회 소 연방 소비예트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이 「회색거인」은 신묘하게도 탄생과 같은 세모에 무대에서 사라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소 연방은 지난 8월의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로 흔들리기 시작해,노벨문학상 수상작자 솔제니친의 주창대로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 등 3개 슬라브공화국의 악수로 그 설자리를 완전히 잃었다. 솔제니친은 그의 저서 「부활할져 러시아여」에서는 물론 기회있을 때마다 『우리는 주변지역을 받쳐줄 힘도,경제 및 정신적인 힘도 없다』고 다른 공화국과의 결별을 주장했는데,그의 주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요즘이다.

소 연방이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를 대체할 많은 후보이름이 지면을 장식했다. 주권공화국연방·소비예트주권공화국연방·자유주의공화국연방 그리고 주권국가연방 등 그 차이가 무엇인지 구별하기조차 힘든 비슷비슷한 이름이 연이어 떠올랐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독립국가 공동체지만 그 성격 등이 확실치 않아 이름의 혼동은 여전하다. 「크렘린」답다.

이처럼 소련의 새 이름이 갈팡질팡하자 지난 가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가 소련의 새 이름을 독자에게 공모했다. 12공화국을 뜻하는 G12에서부터 유라시아대륙에 걸친 나라라는 뜻의 「유라이사아」 등 많은 이름이 들어왔다. 그러나 대상은 고르바초프의 애칭인 고르비를 딴 「고르비스탄」(고르비의 나라)이 차지했다.

소련은 나라이름 못지않게 사람이름도 헷갈린다. ev,in,ov가 많이 들어가는 소련사람 이름은 선뜻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이름 구성자체도 묘하다. 미하일 세르게이비치 고르바초프의 이름에서도 살필수 있듯이 소련사람 이름은 이름­부성­성으로 이어지는 3단계이다. 러시아사람과 희랍정교회와 이슬람계통의 사람이름이 이러한데,성과 이름뿐인 우리보다 한 단계가 더 있다.

고르바초프의 경우 미하일은 이름이고 세르게이비치는 부성이며 고르바초프는 성이다. 이름에 부성이 등장하는 것은 가부장제가 엄격한 유목사회에서는 「×××의 아들」이라고 밝히는 것이 집안을 빛내는 일로 생각했다. 고르바초프의 이름속엔 「세르게이의 아들」이란 뜻이 깃들어있다. 뭔가 복잡하고 석연치 않다. 역시 「크렘린」이다.

나라와 사람이름에 뒤지지 않는 것이 소련지도다. 지도는 정확·정밀성을 생명으로 한다. 특히 근대지도는 군사적인 목적에서 발달해와 무엇보다도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소련지도는 정확·정밀·신뢰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것도 「크렘린」이다.

소련지도는 정부측 지학지학지도 제작국에서 만든다. 소련은 30년 이후 소련지도가 서방에 유출돼 군사적으로 이용될 것을 우려,조작된 지도를 만들어 팔았다. 시판되는 지도를 사들고 여행하다 보면 지도에 있는 강이 찾을 수 없는가 하면 지도에 없는 강이 나타나고 산대신 대평원이 등장해 당황하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도 있다. 지금은 스파이위성의 발달로 감추는 것이 별 의미가 없지만 지금도 정밀지도는 비밀취급 대상이다.

옐친의 러시아주의가 배경에 깔린 독립국가 공동체는 어떠한 생각일까. 지금까지의 「크렘린」이란 엉큼하고 흑막이 많은 소련 그대로 일지,이니면 이를 털어버린 열린 소련이 될지 궁금하다. 밝은 소련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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