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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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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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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전과 지금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20년전 그때의 자료들을 뒤적이다 보면,그렇게만 말할 수도 없겠다는 착잡한 생각이 든다. 보기삼아 72년 7월14일자 한국일보 1면 머리기사에서 따온 다음글을 읽어보자.『정부의 통일노력을 정쟁적 관점에서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 남북공동성명을 정권연장의 수단으로 해석하는 발상이나… 반사회적인 유언비어는 불식되어야 한다』

이말은 제82회 임시국회에서 있은 김종필총리(당시)의 답변중 한 대목이다. 말인즉 옳은 말이지만,그 말에서 엿볼 수 있는대로,그 무렵 시중에는 국회해산·헌정중단 등의 쑥덕공론이 파다했고,정부는 정부대로 그런 「유언비어」를 엄중단속 한다고 부산스러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 헌정사는 되레 그 「유언비어」가 사실이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와서는 다 알려진 일이지만,김 총리가 의정단상에서 옳은 말을 하고 있을 즈음,김 총리도 모르는 가운데 발동이 걸린 유신작업은 이미 두 서너달이나 진행되고 있었다. 7·4남북성명을 둘러싼 「남북합작음모설」의 여지가 없지 않은 것이다.

이같은 20년전의 경험은,「음모설」에 동조하지 않더라도,지금의 남북합의서를 보는 시각을 굴절시키기에 족할만큼 생생하다. 20년전과 지금이 같을 수가 없고,그때와 지금,나라안과 밖의 사정이 다른 줄을 알면서도,그 생생한 기억은 어쩔수가 없다. 그때 느끼던 기대와 불안을 지금 느끼는 기대와 불안에 겹쳐 보게된다. 그때 듣던 갖가지 「유언비어」를,이른바 새해 정일정을 둘러싼 지금의 온갖 억측을 들으며 상기하게 된다. 그래서 외마디 물음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20년전과 지금은 과연 다른가. 다르면 또 얼마나 다른가.

적어도 우리 정치판 형태에 관한한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대단히 부정적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회가 난장이긴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래 가지고 우리 정치가 새로운 남북사태 진전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싶던 점에서도 달라진 것이 없다.

20년전 우리 국회는 연말 정기국회의 국가보위법 등 날치기로 멍이 들어 있었다. 이를 수습한다고 열린 제82회 임시국회 다음날 7·4 공동성명이 나온다. 이 충격이 정기국회 날치기를 둘러싼 국회의장 거취문제와 뒤범벅이 된다. 끝내 백두진의장은 사표를 내지만,여당만의 본회의는 사표수리를 부결하고 폐회한다. 아무래도 13대 국회의 막장을 20년전 그림에서 확인하는 것 같다.

그래도 그때의 임시국회는 개회벽두 7·4공동성명에 대한 보고를 듣고,8일동안이나 질문·답변을 계속했다. 정부는 공동성명은 조약이 아니며,대통령 고유의 법치행위에 속한다는 점을 들어 국회 동의를 요청하지 않았지만,국회로서는 그런대로 따질만큼은 따질 모양새를 갖추었다.

이점만을 놓고 비교한다면,민주화 시대라는 지금의 6공 국회는,그 서슬 퍼렇던 시절의 3공 국회만도 못하다. 이른바 통일대로를 텄다는 남북합의서를 제대로 된 의안으로 상정해 보지도 못하고 만것이다. 국회의 만장일치 지지결의만을 기대했던 정부·여당의 태도 역시 3공때 보다 나아졌다고 할 것은 없다.

굳이 합의서 「비준」 문제를 둘러싼 여·야 주장의 옳고 그름을 가리자는 것은 아니지만,기왕에 20년전과 지금을 비교할 바에는 7·4공동성명과 합의서가 어떻게 다른지를 짚어둘 필요가 있다. 7·4공동성명은 공문서인지 사문서인지도 분간못할 성질의 것이고,공동성명과 함께 이미 발효가 된 것이었던 반면,합의서는 정부가 말하는대로 국제조약의 모든 격식을 갖추었고,그 발표절차까지 따로 정해놓고 있다. 뿐 아니라 합의서는 헌법에 관계되고,여러건의 입법활동을 요구하며,경제협력에 따라 국민부담을 가중시킬 내용을 담고 있다. 당연히 국회가 심의해야 할 이런 사안들을 「특수관계」라는 말 한마디로 얼버무리려 했던 정부나,다른 일로 티격태격하느라,이 막중한 안건을 묻어버린채 파장한 국회나,국민들 보기에는 피장파장 한심할 수 밖에 없다. 이름에서 내각제니 개헌이니 하는 억측이 무성하고,불안속에 20년전 경험을 새삼 되씹게 되는 것이다.

국회의 꼴사나운 난장을 보고도 마냥 침을 뱉지 못하고,그래도 무슨 수습방안이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그런 억측과 불안을 가시게할 방도가 빨리 나와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아무래도 해가 바뀌는대로 임시국회를 다시 열 도리밖에 없다.

정부로서는 지금 합의서와 남북관계에 대하여 국민에게 많은 것을 설명해야 할 부담을 안고 있다. 합의서가 비켜간 핵문제,남북이 함께 지향한다는 평화체제의 성격,합의서이후의 한미관계와 정치일정문제 등이 그 부담의 내용으로 된다. 임시국회를 통하여 이 부담을 털어 버리고 국민을 납득시킬 수가 있어야만 국민들 사이의 억측과 불안이 사라질 수가 있고,그때에야 남북관계의 국민적 뒷받침이 생긴다. 정부의 속마음이 곧다면 임시국회를 마다할 까닭이 없을 것 같다.

국회 역시,앞에 열거한 것들을 정부에게 물어야 할 부담을 안고 있다. 그 과정을 통하여 공론을 수렴하고,남북관계에 대한 국회로서의 의지를 어떤 형식으로든 잡약해야 한다. 그것은 합의서에 상응한 국회의 동의로 족하나,더 나아가 국회로서의 부대결의를 덧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결의가 있는 경우라면,핵문제에 대한 의구심,이산가족문제의 강조,민생중심의 경제협력 등이 그 안에 담을만한 것들이다.

명색이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이,섣불리 장외로 뛰쳐 나가고,성급하게 총선체제 운운하면서 반년 가까이나 남은 임기를 포기하는 것은 국민앞에 죄짓는 짓이다. 말많던 13대 국회나마 그대로 유종의 미를 거둘 시간이 아직 남아 있음을 생각한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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