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을 맞이하여 평화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분단 46년만에 얼었던 민족의 가슴을 녹이는 따스한 햇살을 느낀다. 지난 13일 남북 총리가 서명한 「남북 합의서」는 우리들에게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기엔 아직 미흡한 점이 많지만 이 정도의 합의서를 도출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이번 남북간의 합의는 대화의 위력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한다.
아무리 적대감이 팽배한 두사이 일지라도 자리를 같이 하고 끈기있게 대화를 나누다 보면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남한내 모든 분야에서 대화의 결핍을 절감해 왔었다. 모든 일에 있어서 흑백논리가 팽배했었고,대결만이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길이었고,힘이나 승리만이 정의요 진리로 생각돼 왔었다. 모든 일에 승패를 가늠하려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정치적,사회적 갈등은 심화되어 온 것이다.
이제는 대화가 성숙돼가는 문화를 키워가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 서로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갈등의 상대를 이해하려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지역간,계층간,세대간,노사간,모든 분야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질때 대화문화를 키워갈 수 있다. 이해란 내 입장에서 상대편을 생각해 주는 마음이 아니다. 상대편 입장에 나를 세워서 상대 입장에서 상대를 생각하고 나를 생각하는 마음자세이다. 서로의 입장을 바꿔 서로를 생각해주는 자세를 가질때 진정한 이행의 폭을 넓혀 갈수 있다.
이해 다음에는 포용의 자세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다원사회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을 획일화하거나 단일화할 수 없다. 역사를 바라보면 사회를 특정한 이념이나 체제로 단일화하려 할 때 인권이 유린되고,자유가 박탈되고,평화가 깨졌었다. 소련이 공산주의 이념으로 획일화 하려고 시도했지만 74년만에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이 세상에는 절대적 진리란 없다. 절대적인 진리는 신에게만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진리는 상대적이다. 내 생각이나 주장이 옳다해도 절대시해서는 안된다. 남의 주장이 나쁘게 여겨진다고 해서 못쓸 것으로 매도해서도 안된다. 서로의 주장과 생각을 듣고 좋은 점은 받아들이려는 열려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
2000년전,베들레헴에서 예수가 탄생하셨다는 소문이 들려왔을때 유대의 헤롯 임금은 예수를 죽일 계획을 세웠으나,동방박사들이나 양치는 목자들은 예수를 찾아가 경배하였다.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사람은 언제나 마음을 닫고 있지만,새로운 세계를 내다보는 사람은 언제나 마음이 열려있다.
마음이 열려있던 목자들에게 천사들이 나타나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노래하면서 평화의 소식을 알려준 것이다. 우리 사회에 열려진 마음,포용적인 자세를 가진 사람이 많을수록 대화의 폭은 넓어지고,평화에 접근할 수 있다.
포용 다음에는 공동의 선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톨스토이의 글 가운데 「먼저 엎드리는 지혜」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두마리의 양이 강위에 걸려 있는 외나무 다리를 마주보고 건너게 되었다. 두마리 양이 다리 가운데 도착했을때 다리가 워낙 좁기 때문에 서로 비킬 틈이 없었다.
다리 아래는 급류가 흐르고 있었고 잘못하여 떨어지는 경우에는 영락없이 죽을 수 밖에 없다. 이때 큰 양이 맞은편 양을 향해 눈을 껌벅거리는 시늉을 한 다음 외나무 다리를 껴안고 납작이 엎드렸다. 그때 작은 양이 큰양의 등을 밟고 건너간 후 큰 양이 일어나 외나무 다리를 무사히 건너 갔었다. 큰 양에게 먼저 엎드리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에 두 양이 모두 무사히 강을 건널수 있었다.
우리에게도 힘있는 자가 먼저 엎드리는 양보와 화합의 지혜가 있어야 하겠다. 그때 공동의 선을 창출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정치인이건,사업가건,재야 운동권이건 간에 모든 것을 힘으로 밀어 붙이려는 사고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동의 선을 창출해 갈수 있을 때 우리 사회가 한결 밝아지고 희망찰 것이다.
이번 남북간의 화해와 교류 및 협력에 관한 합의를 계기로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대화의 문화를 성숙시켜 갈수 있었으면 한다.
한국일보는 석간 복간을 맞아 「종교인 칼럼」을 신설합니다. 한 주일을 정리하는 매주 토요일 하오에 독자여러분과 만나는 이 시사칼럼은 성직자들이 나서 날로 혼탁해져 가는 우리사회를 밝고 깨끗하게 가꿀수 있는 지혜를 제시해 주게 됩니다.
「종교인 칼럼」의 첫 필진은 김동익목사(50·새문안교회) 최용록신부(64·절두산순교기념관장) 돈연스님(43·승려시인)이며 앞으로 6개월간 수고해 주십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편집자주>편집자주>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