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매상·인부등 수천명 쏟아져/호객·흥정으로 복도마다 “시끌”/5시께야 겨우 한숨 허기채워대규모 의류도매 시장인 서울 중구 을지로 「평화시장」의 거대한 몸집은 새벽2시께면 힘차게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점포주인과 지방에서 밤새 올라온 소매상,인부 등 수천명이 어둠속에 이리뛰고 저리뛰며 치열한 삶의 열기를 뿜기 시작한다.
조그만 점포들이 수없이 이어지는 상가의 복도마다에는 흥정을 하는 상인들의 목소리로 시끌벅적하고 보따리를 을러멘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지방에서 대절한 버스 등 각종 차량들로 불야성을 이루는 시장 주변도 마치 도심의 러시아워처럼 복잡하다.
새벽2시30분,기다란 3층 상가의 2층에서 숙녀복가게를 내고있는 김영회씨(50) 부부는 평소보다 30여분이나 늦은 탓에 상가복도에 들어서면서 뛰기 시작했다. 짐작대로 다른 점포의 문은 모두 열려있고 자신들 「복조리」 가게앞에는 벌써 단골 지방상인 2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게으름을 피우다 언제 돈 벌어 자식들 시집·장가 보내겠느냐』는 이들의 핀잔섞인 인사를 받는둥 마는둥 김씨 부부는 셔터를 열고 옷 진열을 시작했다. 가게정리도 끝나기전에 지방상인들은 가져온 반품물건의 교환을 요구하고 부탁한 물건을 달라고 조른다.
부인 복조리아줌마(50)는 가격이나 디자인·색상 등을 묻는 질문에 대꾸를 하면서 골라놓은 물건을 얼기설기 포장하랴,지방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랴 정신이 없다. 남편 김씨도 이날 새로 진열한 웃들을 하청업체에서 용달차로 실어다 2층 점포까지 등짐을 지고 날라야 하기 때문에 정신이 없다.
『「광주 꽃수레 집 아줌마」 「목포 희나래집 아줌마」 새옷 나왔으니 구경이라도 하고 가세요』 기다란 복도를 따라 이가게 저가게를 기웃거리는 지방상인들이 종종걸음을 칠때마다 이곳 상인들은 이들을 소리쳐 부른다.
전국 각지에서 대절한 수십대의 버스로 밤새 올라온 지방소매상인들도 숨 돌릴 틈 없이 바쁘다. 짧은 시간에 여러곳의 점포를 돌며 보다 산뜻하고 새로운 디자인과 색상의 옷을 골라야 한다.
새벽3시는 이미 거래가 마무리 돼가는 시간. 지방상인들,교통체증을 피해 새벽장에 나온 서울 변두리 지역 소매상인들의 재촉이 심해져 간다.
경북 김천에서 온 최모씨(40·여)는 『물건을 떼다가 아침 가게 문을 열어야 한다』며 빨리 물건을 꾸려 달라고 성화가 대단했다. 최씨는 4개의 물런 꾸러미를 받아 어깨에 을러메자마자 타고온 버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15∼20여명의 손님을 치러낸 새벽5시께에야 상인들은 겨우 한숨을 돌린다. 대충 정리를 하고 해장국·컵라면 등으로 허기를 달래는 시간은 6시께다.
복조리아줌마를 포함해 이곳 상인들의 대부분은 10대부터 시장에 발을 들여 놓아 새벽일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다.
상가 1층 남성복 코너 「엑셀」 주인 김주영씨(54)는 『이곳의 일은 지방소매 상인들에게 이른 새벽에 물건을 공급,그들이 낮시간에 소비자에게 팔도록 하는 것』이라며 『새벽에 물건을 대기위해 밤새도록 미싱을 돌리고 다림질을 해야하는 근로자들이 이 시장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곳 상인들의 한결같은 걱정거리는 힘든 일을 기피하는 세태탓에 새벽일이 싫다며 떠나는 점원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평화시장의 새벽에서 지게로 등짐을 져 나르는 인부들을 빼놓을 수 없다.
90여명의 인부들은 상가 곳곳의 통로에 배치돼 하청공장에서 실려온 물건을 가게 앞까지 져 나르거나 거래가 이루어져 지방으로 내려갈 물건들을 날라 차에 실어준다. 「올림조」와 「내림조」로 나누어 일하는 이들은 상인들이 손님을 받기전 1시간 전부터 일을 시작해야 하고 상오8∼9시께면 일을 끝낸다.<고태성기자>고태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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