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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길목서 다시 찾아본 통독의 역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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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통일길목서 다시 찾아본 통독의 역정:상

입력
1991.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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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이재승 논설위원 베를린르포/철저한 「흡수통일」… 총칼없는 혁명/동독,모든분야서 서독화/공무원·기관원등 “물갈이”/동서 가르던 금단의 벽엔 도심계획 한창에드윈 라이샤워 전 미 하버드대 교수는 작고하기전 동·서독보다는 남·북한의 통일이 더 빠를 것이라고 예견한바 있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예측이 틀렸음을 보여줬다.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성취한 독일이 어떻게 동·서의 하나됨을 추진하고 있는가. 또한 그 과정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가. 분단 반세기의 벽을 허물어뜨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통일독일의 경험은 훗날 우리에게 교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서독 현장에서 통독의 역정을 쫓아본다.<편집자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2년,동·서독의 통일이 선언된지 1년,독일은 역사적인 통일의 초석을 하나하나 쌓아올려가는데 영일이 없다. 독일의 통일방식은 통합조약(Union Treaty)이 명시한대로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글자그대로 「흡수통일」이다. 호네커의 스탈린주의적 공산독재 체제를 배척한 동독인들이 자의로 선택한 대안이다. 흡수통일은 한마디로 동독의 서독화이다. 구동독의 공산체제를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면에서 서독의 민주·자본주의 체제로 대체하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동독을 서독 수준으로 상향 평준화시키자는 것이다. 체제의 대체는 비록 평화적이라도 본질적으로 혁멍적일 수 밖에 없다.

자유베를린대학의 헬무트 바그너 교수(정치학)는 『구동독의 공산주의 체제는 역사의 시험이 끝났다. 그 체제는 하루빨리 청산할 수록 좋다. 동독인들은 현재의 급속한 서독화 추진에 지금 불만일지 모르나 2,3년뒤에 결과가 나타나면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라고 했다. 헬무트 콜 총리와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이 이끄는 기민·자민당의 연립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서독화 드라이브의 통일정책은 상당수 동독인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으나 서독인들 사이에는 넓은 공감대를 구축하고 있다.

통일독일의 변화된 모습은 동서냉전의 대표적 현장이었던 베를린에서 우선 실감된다. 동·서 베를린을 차단시켰던 베를린장벽은 이제는 오간데없고 그자리에는 공지대가 형성돼 있다.

베를린의 상징적 건축물의 하나인 브란덴부르크문은 장벽철거 이전에는 금단의 문으로 동·서독의 경찰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람의 통행도 「바람처럼」 자유롭다. 동·서 베를린을 잇는 둑의 관문중 하나였던 미군의 찰리검문소도 철거됐다. 동베를린을 찾는 서방관광객들은 어김없이 이곳을 거쳐야 했다. 검문소입구에 있던 「당신은 미군관할지역을 떠나고 있다」는 게시판만이 그대로 남아 냉전의 편린을 보여주고 있다. 찰리검문소에서 동배를족으로 두블록쯤 떨어진 곳에 있던 북한대사관은 통독과 더불어 간판을 바꿔달아랴 했다.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대사관」이 「중화인민공화국대사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익대표부」로 대체됐다. 서독은 동독의 외교관계를 승계하면서 북한에 대해서만은 국교의 자동승계를 거부했다. 통일독일이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를 유보한 것이다.

의회에서 격론끝에 통일독일의 수도로 확정된 베를린시는 통일을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새로운 「도시중의 도시」 건설을 계획하고 있다. 에두아르트 휴센 베를린시 부대변인은 『새 도심은 장벽이 갈라놓았던 포츠타머 플라츠(포츠담광장)에 세워진다. 도시계획도를 공모했으며 곧 당선작을 선정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새 도심건설에는 서독의 대표적 자동차 메이커인 다임러 벤츠사와 일본의 소니사 등이 주축이 되어 참여한다. 베를린장벽이 남긴 넓은 도심의 공간을 활용하려는 관·민합동의 야심작이다. 마르크화를 등에 업은 베를린이 유럽의 센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지도 모르겠다.

동독의 변화는 가시적인 것보다는 불가시적 변화가 더 깊고 크다. 동독체제는 정치,경제,사회,사법,행정,군사,교육,연구,과학,기술,언론,체육 등 국가의 모든 분야에서 해체,서독체제로 재탄생되고 있다. 체제대체는 구동독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범사회적 물갈이와 전면적인 제도전환으로 추진된다. 체제경쟁에서 승리한 서독은 승전국,패배한 동독은 패전국 같다. 통합조약은 서독이 동독의 경제재건을 약속하고 받아 낸 「항복문서」 같다.

통합조약에 따른 구동독공무원 감원기준을 보면 우선 ▲슈타시(비밀경찰) 등 국가보위기구에 종사한자 ▲구동독공산당(SED)과 대중외곽기구에서 체제수호를 위해 적극적으로 봉사한 자 ▲인권과 인권에 관한 일반선언에 위배된 행정행위를 했던 자로 돼있다. 그 다음으로 ▲전문적 지식의 결핍이나 개인적성의 부적합으로 업무요청에 부응하지 못한자 ▲통독후 행정수요의 소멸로 업무할당을 받지 못한 자로 돼있다.

구동독의 공무원 2백만명중 60만명이 감원되고 현재 1백40만명이 남아있다. 해직자는 6개월내지 9개월의 경과기간 동안 급여의 70%를 지급받고 전직을 준비하고 그 이후에는 자동실직한다. 잔여공무원들은 재임명심사를 받게 돼있다. 재임명 공무원에 대해서 체제전환에 필요한 재교육이 실시되고 있다. 사실상 구동독 공무원의 간부들과 기간요원들은 전원 축출된 것이다.

체제수호와 관련된 판·검사들에 대한 재임명도 엄격하다. 동독법무성은 아예 해체,각 주정부 산하의 주법무성에 배속시켰다. 통일독일에서 가장 심각하게 부족한 인력이 법조인력이다. 구동독지역에 법관과 검사가 각각 5천명,1천2백명이 소요되는데 선발가능 구동독 유자격자는 6백명,4백명선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군도 통합과정에서 구동독 군이 대폭 감원됐다. 9만명중 5만명이 통합군에 인수됐는데 이 가운데 장교와 하사관이 1만5천명 내지 1만7천명이다. 50세 이상의 고령자와 대령 이상의 현역들은 모두 전역됐다. 교사들도 20% 이상이 해고되고 있다. 슈타시에 협력했던 자,러시아어 교사,어용어린이단체인 「개척단」의 지도교사 등이 그 대상이다. 구동독체제에 대한 해체작업은 철저하고 엄격하다. 구동독의 기득권층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피를 흘리지 않는 대숙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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