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북간에는 「불가침 상호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이루어졌다. 또한 옐친의 독립공화국 연방선언에 따라 소련 연방정부는 하루아침에 붕괴되었다. 몇세기에 걸쳐 한번 일어날 만한 지각변동이 세계적으로,그리고 한반도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얼마 전 일본 오사카대학에서는 「21세기 일본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7개국 학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심포지엄이 열렸다. 여기에 참석한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스톡원 교수는 일본장래에 관한 낙관적인 그리고 비관적인 두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하였다.
비관적 견해란 선린적인 미·일 관계가 붕괴되면서 동북아지역의 불안이 가중되고,일본의 경제적 곤란,일본 국내정치의 부패·불안 등이 겹쳐지며 속좁은 민족주의가 일본에서 대두되면서 국제적인 마찰이 심화된다는 것이다.
낙관적 견해에 의하면 일본의 경제가 계속 순조롭게 발전하고 세계 경제로 융합하면서 현재보다 한차원 높은 수준의 국제적인 책임을 지며,국내적으로 정치·의사결정 과정에서 개혁을 달성함으로써 세계적인 리더로서 부상한다는 것이다.
또한 심포지엄 말미에 오사카대학교의 하야시 교수는 일본이 해야할 일 그리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먼저 해야할 일로는 첫째 세계정제정책 수립과 수행에 있어 더 많은 책임을 짊어지며,둘째 자유무역의 수혜자로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우루과이라운드의 성공적인 결실과 범세계적인 무역기구 수립에 공헌하며,셋째 아시아 국가들에게 좀 더 넓은 시장을 제공하고 기술 및 경영기법 전파에 노력함으로써 아시아가 세계 경제성장 센터가 되도록 노력하며,넷째 환경보호,인력자원개발,구동구권 경제부흥에 노력하며,다섯째 국내적으로는 주택·사회간접자본 문제 등을 해결,생활의 질을 높이며,마지막으로 모든 인류에게 봉사하는 사회의 건설 등이다. 한편 하지말아야 할 일로는 여태까지 경제적 성과에 대한 자부심이 자만심이나,거만함으로 나타나서는 안되며,둘째 좁은 민족주의적 시각에 집착하지 말고,마지막으로 동구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에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이를 이용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장래는 하야시 교수가 스스로 평가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할 일을 얼마나 일본이 지켜 나가느냐에 따라서 낙관적으로도 비관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심포지엄에서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스웨덴의 린더 교수는 「빛을 밝히는」(Enlightened) 리더십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린더 교수에 의하면 빛을 밝히는 리더십이란 자기민족,자기국가에만 집착하는 그러한 속좁은 리더십이 아니고 인류에게 공헌하는 그러한 리더십이다. 그런데 일본은 자국의 리더십은 합의에 기본을 둔 리더십이기 때문에 서양의 리더십과는 크게 다르다고 주장한다. 물론 합의에 근거한 리더십은 그 나름대로 장점이 매우 크다. 합의 도출과정은 힘들지만 일단 합의가 이루어지면 반발과 부작용을 극소화하면서 조직이 움직여 일을 쉽게 추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합의에 근거한 리더십에도 문제가 또한 있다. 논의과정에서 소수의견이 다수의견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되며 특히 합의라는 것이 강자에 의해 강요된 합의일 경우 문제가 된다. 합의과정에서 구성원의 의견보다 조직의 생리자체가 의사결정을 해 버릴 위험도 크며 합의라는 것이 국제적인 시각보다는 편협한 민족주의 입장에서의 합의일 수도 있다. 우리는 과연 일본이 얼마나 빛을 발하는 러더십을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 보일 수 있을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최근 소련의 붕괴와 중국의 경제적 한계로 동북아 지역에서의 4강 균형은 깨어졌다.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이상,미·일간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부딪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우리 입장에서는 스톡원 교수의 낙관적인 견해가 들어 맞아서 미·일관계가 순조롭게 유지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미·일간 가능한 모든 사태발전을 염두에 두고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과거 구한말과 같이 친일,친중,친소,친미 등으로 나뉘어서 외세를 끌어 들이고 서로 다투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겠다.
과거 정치·군사적 측면이 국제관계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절에는 한국은 외세에 침략을 받기 가장 좋은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고 그 결과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경제관계가 주류를 차지할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미·일 등 경제선진국과 중·소 등 경제개도국의 중계자적인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지정학적인 위치가 우리에게 크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현실로 다가선 남북통일이 이루어진다면 인구 7천만의 한민족공동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치·경제 규모가 될 것이다.
21세기 우리의 가능성은 무한히 크며 이를 위해서는 빛을 밝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조그만 도시를 방문했을때 이 도시에도 대통령감은 여러명있다고 했다한다. 그것은 평상시 리더는 건전한 소양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으며 결국 리더는 사회가 어떻게 키워주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함축적으로 의미한다. 그렇지만 격변의 21세기,가능성의 21세기를 이끌어나갈 우리 리더는 여기에 덧붙여 정확한 판단력과 미래를 내다보는 비전을 겸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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