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정치주도권 확정/「공동체」 연계정도 “관심”/“체제 새로우나 문제는 여전” 앞날 우려도고르바초프와 옐친의 소련연방해체 합의로 「낫과 망치」의 적기가 오는 31일 크렘린궁에서 영구히 내려진다.
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가 발호하던 1917년 무산계급사회의 이상을 내걸고 출범했던 소련사회주의가 크나큰 「실패」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된 것이다. 혁명초기의 신화때문에 「20세기의 대서사시」로 미화되기도 하고 「철의 장막」으로 비판받기도 했던 소련은 사회주의실험의 실패라는 비극적 유산을 남긴채 74년의 역정을 마감하고 있다.
소련(USSR)의 종언은 쿠데타실패발트3국독립슬라브공동체 창설 등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속에서 이미 예견돼왔다. 그러나 그 역사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
소련소멸은 우선 20세기 국제질서를 내내 왜곡시켜 온 냉전체제의 완전 청산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의 창의와 자유를 말살한 통제체제가 민주정치체제를 능가할 수 없음을 역으로 증명해 주었다. 아울러 공산주의 이상의 현실적 한계를 극명하게 실증해 주었다. 이와함께 『냉전종식 이후의 대체질서를 새롭게 창출해야 한다』는 과제를 제기하는 한편 자본주의국가들에도 『혁신없이는 붕괴한다』는 경고를 던져주고 있다.
소련 국내정치만으로 범위를 축소시키면,연방해체선언은 옐친의 정치주도권 확보를 최종 확정지었다고 볼 수 있다. 옐친 등 슬라브계 세 공화국지도자들의 연방소멸 선언후,마지막 저항을 하던 고르바초프가 17일 신연방조약을 포기하고 옐친주도의 독립국가공동체 출범에 동의함으로써 옐친의 승리를 인정한 셈이다.
당초 고르바초프는 『연방정부 해체는 핵무기를 보유한 공화국간의 대립을 촉발시켜 대재앙을 초래할 것』이라면서 연방유지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그러나 카자흐 등 회교권 5개 공화국이 독립국가공동체에 참여키로 결정하고 아제르바이잔 등 여타 공화국들도 호의적 반응을 보이면서부터 고르바초프도 대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고르바초프는 『대부분 공화국들이 독립국가공동체를 비준할 경우 이를 받아들이겠다』고 물러선데 이어 17일 옐친과의 회담에서 「백기」를 들고 말았다.
이로써 소련소멸 이후의 새 지도에는 독립국가공동체가 자리잡게 됐다. 그동안 옐친 등이 구체제소멸에만 진력해왔기 때문에 공동체의 구체적 모습이 아직 명확히 드러나 있지는 않다.
하지만 전후 정황으로 볼 때 연방정부나 연방의회 등 중앙기구가 존재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공동체 창설자들은 중앙정부 대신 권한이 훨씬 미약한 「조정기구」를 두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 경우 공화국들은 자체적으로 법률을 제정하고 외교권을 행사하는 독립국가로 재탄생하게 된다.
연방(Union Federation)이라는 용어 대신 공동체(Commonwealth)라는 명칭을 선택한 점도 다분히 「느슨할대로 느슨한」 연계를 시사하고 있다.
재정부문에 있어서도 각 공화국은 자체적인 예산과 조세,관세권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기 독자화폐를 발행할 가능성이 높다. 루블화는 과도기간 동안만 공용화폐로 사용될 공산이 크다.
가장 중요한 국방문제는 핵통제일원화공화국군 창설로 정리되리라 예견되고 있으나,카자흐공화국 등이 핵무기를 계속 보유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상당히 유동적이다. 핵통제 문제를 비롯한 공화국간 연계정도 등 구체적 쟁점사안들은 9개 공화국지도자가 참석하는 오는 21일의 알마아타회담에서 정리될 전망이다.
고르바초프옐친의 합의로 소련연방 해체가 권력투쟁의 양상없이 이루어질 수 있게됐지만,그렇다고 독립국가공동체의 앞날이 순탄치만은 않다. 주요외신들은 『체제는 새로우나 문제는 여전하다』고 소련해체 이후의 상황을 압축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물가고와 실업문제 등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는한 독립국가공동체는 순항을 할 수 없다. 올 겨울을 넘기기 힘든 소련인들에게는 체제의 변화는 관심 밖이다. 『누가 식탁에 빵을 올려주느냐』가 중요할 따름이다.
또한 경제능력과 문화가 상이한 공화국들이 과연 조화를 이루어낼지도 의문이다. 구연방 체제하에서는 중앙정부가 보조금 등으로 공화국간 차이를 조정했지만,새 체제아래선 통제·조정기구가 없어지기 때문에 공화국간 이기주의가 충돌할 우려도 높다. 만약 경제난과 공화국간 이기주의,민족분규가 겹칠 경우 고르비의 예언처럼 대재앙이 초래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새로 탄생하는 「공동체」는 어떤 형태로든 현재의 소연방과는 질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에따른 세계정치판도에 크나큰 반향을 불러일으킬게 틀림없다.<이영성기자>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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