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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합의서」 무엇이 문제인가/김경원칼럼(기류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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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합의서」 무엇이 문제인가/김경원칼럼(기류조류)

입력
1991.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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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템포가 점점 더 빨라지는 것 같다. 지난 12월13일 조간신문들은 소련의 붕괴소식과 함께 「남북합의서」가 채택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그런데 흥미있는 점은 전자가 후자를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이다. 70년대초의 남북대화도 미·중공 접근이라는 극적인 국제정세의 변화속에서 이루어졌듯이 1991년의 남북 합의서도 공산주의의 몰락이라는 엄청난 세계사적 사건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북한이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모종의 합의조건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남북고위회담이 시작될때부터 이미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상황이 그렇게 변했다는 뜻이다. 89년 10월 어느 월간지의 좌담에서 필자는 북한이 경제적 위기와 외교적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남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한적이 있지만,사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의 문을 두르리다 미국이 응하지 않으니까 일본문을 두르렸으나 일본도 문을 열지 않으니까 이제 하는 수 없이 한국에 접근해 보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으로 공산주의가 몰락한 지금 한국의 입장은 과거 어느때보다도 유리하게 되었다. 더욱이 미국과 일본이 대북한정책에 있어서 한국의 입장이 약화되지 않도록 일관된 자세를 견지하는 한 우리는 북한이 기본전략을 수정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할 수 있다.

북한은 외부로부터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북한이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한국이 그 열쇠를 갖고 있다.

그러면 「남북합의서」는 우리의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을 활용하여 이땅에 평화의 씨를 심고 민주통일을 앞당기는데 별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신문사설들과 전문가들의 논평들은 대체로 다음 두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첫번째 문제는 북한의 핵무기 문제를 유보한채 합의서가 채택되었다는 점이다. 정부측에서는 늦어도 2월중의 제6차 고위급회담 이전까지는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하지만,정부의 낙관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들은 정말 그렇다면 합의서도 제6차 회담에서 핵무기 문제 해결과 동시에 채택하는 것이 순리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만일 북한이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면서 상당기간동안 핵문제에 대해 만족할만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면 남한측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둘째로 많은 논평들은 이른바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도 문제삼고 있다. 이제 남북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로한 이상 「정상회담」이란 표현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많은 사람들은 남한측이 「정상회담」을 상당히 강하게 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그렇게 믿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남한측이 정상회담을 조기성사 시키기 위해 필요이상으로 또는 위험스런 수준까지 양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남북의 최고통치자가 만나는 것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물론 어느정도의 위험부담은 있게 마련이지만 남북정상회담은 상징적으로 중요할 수 있고 실제로도 남북관계를 개선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솔직하게 말해서 집권층이 이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신에서 연유한다.

이것은 핵무기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합의서를 북한의 핵무기 문제 해결과 동시에 채택할 것인가 아니면 합의서를 먼저 채택함으로써 핵문제 해결의 길을 트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가 하는 문제는 협상의 기술문제로서 실제로 협상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옵서버의 입장에서는 확신을 갖고 판단하기 힘든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정부의 협상전술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정부의 정치적 저의를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남한측은 국내정치적 목적때문에 북한의 핵무기 문제해결을 뒤로 미루고 합의서만이라도 서두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불신은 어떻게 보면 우리의 불행한 역사적 경험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인은 어디에 있건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남북협상과 관련하여 정부측의 저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만일 북한측이 남한당국의 협상동기가 그 어떤 국내정치적 필요에 기인한다고 해석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게 된다. 그런 경우에는 남북합의서의 정통성만 손상되는 것이 아니라 남북협상 자체가 균형을 잃게될 수 있다. 또 남한내부에서의 상호불신은 북한의 협상전략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또 그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혹때문에 불신은 더욱 깊어질 위험성이 있다.

우리는 하루 속히 불신의 독소를 제거해야 한다. 불신의 원인이 어디에 있건 정책 수립의 책임자는 자신의 정치적 동기에 대한 국민들의 의구심을 씻어주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그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앞으로 남북관계를 관리해 나가는데 있어서 헤어나기 어려운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사회과학원장·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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