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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비화·부침야사(재벌이력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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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비화·부침야사(재벌이력서:2)

입력
1991.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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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3대 재맥… 쌀가게·정미소·포목상/박흥식 필두 이병철·정주영·설경동등/전택보·최태섭·최성모씨도 쌀로 기업/백낙승·구인회·이정림등은 포목상이 모태고급승용차와 높은 빌딩,호화저택에 가려져 있는 재벌들을 이해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들의 일상생활은 따라서 때로는 신비롭게,때로는 흥미진진한 한편의 드라마로 외부에 비춰지곤 한다. 그러나 그들의 베일에 가려진 창업과정을 한꺼풀 벗겨보면 아주 평범한 필부라는 사실에 다소 놀라게 된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가난과 정면 도전했고 기회를 그 누구보다도 잘 포착했다는 정도다.

오늘의 재벌들이 장사수업을 시작한 30년대 전후에는 세계적으로 대공황이 엄습했고,만주사변과 중일전쟁이 확대되면서 많은 물자가 대륙으로 이송되고 있었다. 또한 일본의 많은 자본가,기업인들이 국내로 몰려와 우리나라 사람들은 재력이 모자라 기업을 할 엄두도 못냈다. 대지주의 후손으로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노다지를 잡은 사람이 아니면 기업을 일으킬 엄두도 못낼 상황이었다. 많은 자본도 없이 손쉽게 출발할 수 있는 사업이라고는 고작해야 정미소나 쌀가게·양조장·폭목상 정도였다. 우리나라에 쌀가게·정미소·포목상으로 출발한 재벌들이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제 말엽 거부였던 박흥식이 처음 시작한 것도 쌀가게였고 이병철(삼성),정주영(현대),최태섭(한국유리),양태진(국제),설경동(대한전선),장경호(동국제강),정태성(성창기업),전택□(천우사),최성모(신동아) 등 상당수 기업가들도 쌀가게나 정미소를 운영했다.

설경동씨는 열다섯살 때 쌀장사를 시작했고 변호사 지망생이었던 최태섭씨도 평양에서 정미소를 운영했다. 최태섭씨는 색향이요 유흥의 도시인 평양에서 총각사장으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막벌이 공사장에서 일하던 정주영씨도 자동차서비스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쌀을 배달하고 있었다. 서울에 올라와 부두 하역일,철도 공사판 등을 전전했던 그는 열여덟살때 비가 와도 공칠 일이 없는 직종을 찾던 끝에 복흥상회라는 쌀 소매상의 배달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전거도 제대로 탈 줄 모르던 그는 복흥상회 배달원 4년만에 신용 하나만으로 주인에게서 가게를 인수받아 신당동에 경일상회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그의 나이 22세,1937년의 일이다.

공부에서 사업쪽으로 눈을 돌려 애초부터 정미소를 차린 사람은 이병철씨. 고향인 진주와 서울·동경을 오가며 전전하던 학업을 중도에서 집어치운 그는 26세때 부친으로부터 돈 5만원을 받았다. 당시로는 적지않은 돈이었다. 그는 이 돈으로 동업자 2명과 함께 마산에 최신시설을 갖춘 정미소를 차렸다. 돈도 제법 벌었다. 그는 정미소에서 한때 많은 돈을 벌자 운수업에 뛰어들고 부동산에도 투자했다. 어찌 보면 문어발식 경영은 그의 타고난 사업수완이었다.

그는 후일 회고록에 이렇게 적고 있다. 『뭐든지해서 안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호기도 부렸다. 마산에 예닐곱개 있던 요정의 반듯한 기생은 모두 예약해서 놀기도 했다. 하루는 경남의 경찰부장이라는 일본인이 마산에 왔으나 내가 모두 예약한 뒤라 기생을 구할 수 없었고 부하들이 내게 와서 기생을 좀 빌려달라고 했으나 거절했다. 그로 인해 후에 고생한 것은 물론이다』

이처럼 당시 정미소는 오늘날 재벌의 산실이자 요람이었다.

럭키금성의 창업자인 구인회씨가 맨처음 시작한 사업은 포목상이다. 그는 일본인인 무라카미가 고향에서 눈깔사탕 장사를 시작으로 연필 공책 석유 등 잡화제품으로 동네상권을 독점하는 것을 보고 선배동료들과 합심,무슨 물건이든 싸게 사다 싸게 공급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이에 대응하면서부터 사업을 배웠다. 수입과 지출을 정리하던 그는 보다 큰 사업을 꿈꾸게 됐고 이 꿈이 진주의 포목상으로,오늘날 럭키금성그룹으로 발전했다.

해방후 최초로 재벌 칭호를 얻은 태창 재벌의 백낙승과 한때 재계를 리드했던 개풍그룹의 이정림,한일합섬의 김한수,태광산업 이임룡씨를 비롯,3대를 이어오고 있는 두산그룹도 거슬러 올라가면 포목상이 출발점이다.

이밖에 이양구(동양그룹)·서성환(태평양화학)·김인득(벽산그룹)씨 등은 식료품상과 화장품장사 영화관 운영 등으로 자본을 모아 사업을 번창시켰고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은 마도로스를 꿈꾸다 트럭 한대로 출발,오늘날 전세계를 누비는 운송재벌이 됐다.

재벌들의 출발이 이처럼 초라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늘과 같은 부의 배경과 비결이 더욱 신비롭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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