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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련… 혼돈·새질서의 91년/되돌아본 대변혁의 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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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련… 혼돈·새질서의 91년/되돌아본 대변혁의 지구촌

입력
1991.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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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구 분열·통합 “몸부림”/걸프전… 미 위상 다시 굳혀1991년은 「격동」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엄청난 혼돈을 겪은 한해였다. 새해 벽두에 터진 걸프전은 1년내내 지축을 흔들며 계속된 일대사건들의 예고탄이었다. 걸프전에 이어 발생한 유고내전,소련쿠데타실패,공산주의 및 소련 연방의 종언,유럽통합 움직임,일본의 경제침공,아프리카의 민주화 조류 등은 역사의 상식을 초월한 대사건이었다. 세계유일의 냉전지대인 한반도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토대로 통일을 향한 거보를 내디딘 사실도 세계사에 기록될만한 뉴스였다.

외양적으로는 이들 사건들이 별개로 터졌지만 그 본질을 들추면 인과관계로 얽혀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의 좌익 일당독재가 다당제로 변화한데는 소련 및 동구의 해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이들 사건들은 20세기 한세기를 지비해온 동서냉전을 매듭짓고,21세기에 새로운 대체질서를 창출하려는 방향감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한세기를 마감하는 90년대 역사의 흐름이 어떤 양상을 띨 것인지를 보여주었고,향후 수년이 21세기 지구촌에 얼마만큼 중요한 시기인지를 절감케 했다.

이처럼 숱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역시 소련사태였다. 보수파의 「8·19」 쿠데타기도가 실패하면서,소련은 급진개혁을 넘어서 구체제붕괴와 새로운 사회건설이라는 운명을 맞게됐다. 역사가들은 이를 「반볼셰비키혁명」이라고 명명할 정도였다.

1917년 차르체제를 종식시키면서 세계지성사에 「계급없는 평등사회」의 선풍을 불러일으켰던 공산주의는 역사속으로 사라져 갔고,그 공백을 메울 대체 이념은 아직 형성되지 않고 있다. 공산주의의 종언은 중앙통제권력의 와해를 초래했으며 급기야 각 공화국들의 분리독립을 촉발시켰다.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3국은 일찌감치 소련연방에서 벗아났고 2대 공화국인 우크라이나마저 연방으로부터 탈퇴를 선택함으로써 세계의 절반을 장악해온 소련연방은 형해만 남게됐다.

이같은 혼돈속에서 소련은 새로운 체제를 창조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이미 고르바초프의 신연방조약은 용도 폐기됐으며,옐친주도의 독립국가공동체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련의 격변은 고르바초프대통령 자신에게도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라는 양날개로 화려하게 비상하던 고르바초프는 자신의 이상을 시베리아 동토에서 착근시키지 못한채 날개를 접어야할 운명에 처해있다. 소련의 소멸과 인민의 궁핍 등은 그의 화려한 외교역정에 쉽사리 봉합키 어려운 생채기를 낸 셈이었다. 뉴욕타임즈는 최근 소련역사에 대한 책임감으로 막바지 전력을 다하고 있는 고르바초프를 『운명과의 랑데부를 연기하고 있는 슬픈 영웅』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소련과 함께 분열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는 유고도 소용돌이의 중심지였다. 유고내전이 단순한 연방유지 여부를 둘러싼 갈등이라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만,민족대립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중량있는 이슈로 부각됐다. 다민족의 얽힌 역사를 안고 있는 유럽은 유고내전을 「뇌관」으로 우려하고 있으며,소련사태가 유고식 내전으로 비화할까 걱정하고 있다.

유럽 동쪽의 파열음과는 반대로 서유럽은 통합을 향해 그런대로의 조화음을 만들어 냈다. 유럽공동체(EC) 12개국 정상이 모인 마스트리히트회담은 정치통합에서 다소간 불협화를 나타냈지만 경제통합의 「통합유럽」 원칙에는 큰 진전을 이룩해냈다.

동서유럽의 통합·분열이라는 아이러니 속에서 미국은 걸프전을 통해 최강의 실세임을 입증했다. 미국은 압승을 기반으로 월남전이후 상실했던 국제질서 주도능력을 회복했으며 이 과정에서 유엔의 위상도 상당히 높아졌다. 그러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패전에도 불구하고 철권통치를 계속하고 있고 쿠웨이트 민주화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현실은 전쟁의 공과를 곱씹게 한다.

하지만 미국이 걸프전 승리의 여세를 몰아 중동의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10월30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이스라엘­아랍국간의 회담을 성사시킨 사실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국제외교가의 91년 한해를 더듬다보면 미국의 욱일승천이 빗나 보인다. 그러나 진주만공습 50주년(12월7일)을 기해 냉정하게 본 미국은 결코 영원한 일인자가 될 수 없었다. 50년전 2차대전의 패전국인 일본은 경제적으로 급성장,GNP에서도 미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많은 역사학자들은 『금세기말의 억사전면에는 소련붕괴 등이 자리잡겠지만 역사의 이면에서는 사활을 건 경제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언한다. 91년은 이러한 예언들이 극명하게 표출되기 시작한 대변혁의 한해였다.<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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