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통일로 가고 있다/남북 합치면 「규모의 경제단위」 가능/양측 딜레마 보완기능 기이할정도/서로간에 불신·우려풍조 잠재워야/「한민족 적자 20세기」 보내며 역사의식 긴요○송년메모
지난해 이 무렵 나는 출장길 비행기에서 이런 글귀를 쓰고 있었다. 한해를 돌아보면서 생각나는 단상을 정리해 보는 송년메모였다.
『통일우리에게 통일은 무엇인가. 이상인가,환상인가. 관념적 이데아인가,현실적 목표인가.
현존하는 국경이 소멸되고 국가의 개념마저 혁명적으로 변해가는 세계정세 속에서 오직 한반도를 가로지른 쇠빗장만 요지부동이다. 백년전의 구한말,우리 선대들은 강한 서풍에 실려오는 개화를 외면한 채 변화하는 국제기류에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그 응보가 바로 오늘날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지위로 나타난게 아니냐. 이제 국제환경이 구한말을 능가할 만큼 격변하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혹시 꿈속을 헤매고 있는게 아닌가』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다시 송년메모를 써야할 시점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의 메모에는 엊그제 열매맺은 남북합의의 감격이 반드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참으로 오랫만에 이뤄낸 소중한 결실이었다. 7·4공동성명이 발표된지 벌써 20년이나 훌쩍 흘러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그런 세월이 두바퀴나 돌아가버린 시간의 흐름속에서,우리가 그동안 쌓아온 통일의 탑은 항상 땅바닥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가 이제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셈이다.
화해와 불가침과 교류를 기본정신으로 삼아 평화통일을 민족의 비전으로 제시한 이번 합의는 몇가지 우려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전문과 25조로 구성된 이번 합의문중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게 없다. 모두 의미심장하고 감격스런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업인의 입장에서 제15조가 갖는 의미를 매우 가치있게 평가하고 있다.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 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민족내부 교류로서의 물자교류,합작투자 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나는 이것이면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는 기본을 해결할 수 있다고 낙관한다.
나는 정치는 모른다. 정치의 구도도,정치인의 생리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히 아는 것은 삶을 지탱해주는 현실적 수단으로서의 경제문제다. 이것만큼은 자신이 있다. 정치문제,군사문제 등이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사람들은 전망한다. 그만큼 미묘한 사안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정치니 군사니 하는 문제는 힘과 대결의 논리구조를 갖게 마련이다.
○경제는 협력구조
그러나 경제는 다르다. 경제는 서로의 실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운용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공동번영이 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합의문 15조가 남북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키워드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현재 남쪽과 북쪽은 모두 경제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 딜레마는 서로 다른 양상을 띠고 있으나 남북 어느 쪽도 낙관할 수 없는 상당히 어려운 국면에 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은 양측의 딜레마끼리를 서로 연결시켜 보면 한쪽의 문제를 다른 한쪽이 해결해 줄수 있는 중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컨대 북측의 가장 시급한 문제는 공장을 가동하기 위한 인프라의 해결이다. 그중에서도 전력난은 매우 심각하다. 반대로 남쪽에는 화력발전소 하나를 지으려 해도 적정한 땅이 없다. 따라서 남측이 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기자재를 제공하고,북측이 땅과 건설을 책임지면 전체비용이 서로 비슷하게 분담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화력발전소를 돌릴 석탄은 북에 풍부하여 지금도 중국에 연간 3백만톤씩 수출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생산된 전기를 남북이 사이좋게 나눠쓰는 일은 전혀 어려운 계산이 아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생산시설이요 생산할 제품이며 이것을 뒷받침할 기술일 뿐이다. 그런데 이것들이 우리에게는 충분히 있다. 우리기업은 지난 수년간 오프쇼어(OffShore) 비즈니스에 열을 올려 동남아는 물론 선진국에까지 뛰어들어,해외공장을 운영하지 않는 대기업은 이제 거의 없는 상태다. 이런 방식으로 생산된 수출액이 거의 백억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북한만큼 유리한 조건의 생산기지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남한에서 경쟁력을 잃어가는 상품일수록 북한에서 생산하면 경쟁력이 커질 수 있다. 가령 섬유만 하더라도 북에서 원단을 짜게 하고 남쪽에서는 염색 등 후가공 분야를 분담하게 된다면 코스트도 싸지고 생산량도 증대될 수 있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아 신발,피혁,목재,봉제 등 60년대 우리 수출산업을 선도했던 모든 경공업 제품이 여기에 해당된다.
○남녘에도 활력소
그렇다면 남측에는 무엇이 좋은가. 우선 시장의 확대를 꼽을 수 있다. 현재 EC와 미주 대륙의 흐름에서 나타나듯이 세계는 지역경제 체제로 빠른 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들은 유럽은 유럽끼리,미주국가는 미주국가끼리 역내에서 필요한 것을 서로 주고받으며 성장도 하고 발전도 꾀하도록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제블록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자급자족이 가능한 일정한 「규모」를 기본으로 깔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EC나 미주국가의 경우 모두 인구는 3억명 정도,그리고 GNP는 5조달러쯤 된다.
남북한은 합치면 인구가 7천만이 조금 넘는다. 그러나 교류가 본격화되고 자유로운 왕래만 정착된다면 이 인구는 요술방망이처럼 변할 수 있다. 무슨 얘기인가. 북한과 중국사이의 국경은 사실상 국경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38선만 열리면 한국의 상품은 중국북부와 만주는 물론 몽고 일부 지역과 시베리아까지도 한걸음에 진출할 수 있게 된다. 동쪽의 사할린도 한국의 시장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이 지역 여기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재외교포들이 우리에게 매우 유리한 거점이 될 수 있다. 이렇게 치면 한국이 확보하는 시장의 인구는 어림잡아 3억에 근접하게 됨으로써 인구면에서 「규모」의 경제단위가 될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세기는 민족의 대화합에서부터 주춧돌을 다시 놓아야만 한다. 통일은 화합의 결정체다. 따라서 통일이 이룩되면 이 역사적 사건은 한민족 개개인의 의식구조에도 혁명적 변화를 가져다 줄것이 분명하다. 내연하는 지역감정,확대되는 계층간의 갈등,보혁간의 대립,기업의 노사문제,세대간의 불화 등 모든 대립과 갈등의 구도가 화해와 협력의 구도로 변환될 수 있다.
○우리손,우리끼리
나는 이번 남북합의를 자랑스럽게 평가한다. 그 이유는 이번 합의를 우리의 손으로 우리끼리 자발적으로 이루었다는 사실때문이다. 만약 이런 합의가 외세를 업거나 벼랑 끝에 몰려서 마지못해 맺어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분명코 민족의 수치로 역사에 기록됐을 것이다. 분단이 강대국의 손에 의해 주어진 운명이었다면 이제 그 운명의 사슬을 끊어버리는 일 만큼은 우리의 손으로 해야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곧 역사의 주인이 취할 도리라고 믿는다.
이번 합의가 주는 의미가 이것말고도 또 있다. 우리는 매사에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통일도 마찬가지여서 노력없이는 결코 달성될 수 없는 큰 숙제이다. 한동안 불가능해 보였던 남북관계가 이처럼 진전된 것도 알고보면 꾸준한 노력 덕분이다. 단속적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다소 소극적인 입장으로 후퇴한 때도 없지 않았으나 정부가 그동안 꾸준히 한 방향으로 노력해온 것도 사실이다.
경제협력이 일단 개시되기만 하면 남북 모두가 얻게 되는 현실적 실익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경제적 실익보다 더 소중한 요소들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화해의 정신이다. 사실상 지난 한세기는 한민족에게 적자의 역사였다. 20세기는 참담한 역사의 연속이었다. 이제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이같은 역사의식을 가져야만 한다.
이번 결실을 그 노력의 열매로 평가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이제 새로운 세기를 바라보면서 우리는 민족의 장래를 좌우하게 될 중요한 선택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온민족이 애창하는 노랫말처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다. 그러나 통일을 「소원」만 할것인지 「실현」의 마당으로 끌어낼 것인지는 지금부터 우리가 선택할 일이다.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다음과 같은 원칙이 일관성 있게 지켜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통일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매사에 타이밍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정세가 한반도 통일에 지금처럼 유리하게 작용될 때가 아직까지 없었다. 그러나 기회란 항상 주어지지 않는다. 이점은 국제정세를 공부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일이기도 하다.
둘째,여유있는 쪽이 보다 많이 양보해야 한다. 이것은 협상과 대화의 기본원칙이며 사람사는 이치이기도 하다. 여유없는 쪽은 양보할 것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쪽이든 북쪽이든 많이 양보하면 결국 양보하는 쪽이 역사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
셋째,서로의 자존심은 존중되어야 한다. 7·4공동성명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를 조망해보면 서로가 자존심을 앞세운 대결이 많았다. 어느쪽이든 자존심을 손상당하면 협상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이미 남북은 모두 자존심에 목숨까지 걸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라도 상대의 자존심은 존중되어야 한다.
넷째,길게 보고 멀리 생각해야 한다. 통일은 오늘 내일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한해 두해 사이에 이루어지기도 어렵다. 따라서 통일문제를 다루는 정부나 국민 모두 길게 보고 멀리 생각해야 한다. 통일은 적어도 민족의 다음 세기를 내다보는 구도로 추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려의 목소리
합의문에 서명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국민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핵문제가 핵심인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지 모른다는 현실적 우려도 있다. 또한 7·4 공동성명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도 있다. 이것은 남과 북 양측의 집권층을 모두 의심하는 정치 불신적 입장에서 나온 얘기일 것이다. 또는 북쪽만을 의심한 나머지 이번 합의도 전술적 제스처로 해석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더러는 북측이 경제적 긴박성 때문에 경제적 실리만을 추구하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이런 의심은 자칫하면 우리의 경제협력이 송양지인으로 악용될지 모른다는 우려로 비화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이런 우려와 의심을 빨리 잠재워야 할 의무를 지닌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 정부는 통일의지를 가시화해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 실체가 하나하나 드러나면 의심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리 내부의 컨센서스를 다지는데 더욱 주력해야 한다. 통일논의에 여야도,빈부도,남녀노소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이번 약속만큼은 지켜질 것으로 믿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불신이란 것도 띠지고 보면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이든 믿고 나서야 관계가 확실해지는 법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줄곧 믿지 않는 쪽에 서 있었다. 물론 반세기 가까이 불신해온 북측을 하루아침에 믿기란 쉽지않다. 그러나 우리가 믿지 않는 동안 북쪽의 동포도 우리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서로 불신하면 우리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이번 한번쯤은 입장을 옮겨 믿는 쪽에 서봐도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통일의 대장정은 이제 시작이다. 그러나 우려의 소리가 출발하는 발목을 붙잡아서는 안된다. 시작하기도 전에 어떻게 통일이 가능하겠느냐고 설익은 학자의 논리나 이기적인 정치입장에서 회의론을 품을 수는 없다. 도전중에 통일을 위한 도전은 절대적이며 얼마든지 과감해도 손해될 게 없다.
이제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약속한 일은 지키도록 만들어가는 것도 통일문제를 담당하는 정부당국의 능력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매사에 약속을 얻어내기는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행토록 하기는 쉽지 않다. 이점에서 통일문제는 공든 탑을 쌓듯이 꾸준히 노력해야할 국민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올해 내 송년메모에는 이렇게 적을 것이다. 『천하통일과 천하분열이 교차되는 오늘의 국제환경은 그야말로 놓칠 수 없는 호기이다. 그리고 새로운 역사와 통일의 기운은 민족을 그 바탕으로 삼고 있다. 이 사실을 움켜쥐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것인가. 아마 19세기말,구한말의 선조들이 두고두고 원망받듯이 20세기말을 살고 있는 우리도 후손들로부터 긴긴세월 동안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끝으로 축하속에 부활된 한국일보의 석간이 통일문제에 비전을 제시하는데 향도적 역할을 맡아준다면 매우 값진 역사를 기록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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