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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세르베시(장명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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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세르베시(장명수칼럼)

입력
1991.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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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장벽이 붕괴되던 89년 11월,그로부터 21개월후인 91년 7월,나는 독일 취재를 하는 소중한 경험을 했는데 그때 매우 인상깊었던 것은 서독측의 사무적인 일처리 능력이었다. 장벽이 무너지고 동독인들이 물밀듯 서쪽으로 밀려내려오는 감격적인 역사의 현장에서 서독측은 차분하고 치밀하게 자기 할일을 하고 있었다.그많은 동독인들에게 일일이 환영금을 나눠주는 이동은행버스,뜨거운 음식을 제공하는 급식소,이동화장실,동독인에게만 무임승차가 허용되는 버스와 지하철,그 와중에서도 빠뜨리지 않는 『아기를 동반한 어머니와 노인들이 먼저 버스를 타라』는 안내방송…. 수만명의 「가난한 4촌들」을 일시에 맞이한 서독측이 우쭐대거나 흥분하지 않고 베푸는 빈틈없는 접대는 무서울 정도였다.

통일후 다시찾은 독일에도 빈틈없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었다. 구 동독 5개주의 각급 행정관서에는 서독측에서 파견한 관리들이 장자리에 앉아 자본주의식 행정을 가르치고 있고,낮은 생산성으로 실직에 직면한 동독인들에게 광범위한 전직훈련이 시행되고 있었다. 동독이라는 거대한 부실기업을 인수하여 막대한 통일비용을 쏟아붓고 있는 서독측은 인내심을 가지고 치밀한 대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동독인들로서는 아니꼬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비스바덴시에 있는 독일언어협회는 최근 91년의 최우수 신조어로 「베세르베시」(Besserwessi)란 말을 선정했는데 이 말은 무엇이든 잘아는척하는 오만한 서독인 관리들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독일언어협회는 이말이 『통일후 동·서독인들의 미묘한 갈등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동·서독인들이 서로를 「오시스」(동독인들) 「베시스」(서독인들)라고 부르는 것은 남한사람들이 북한 피란민을 맞아 「이북내기 다마내기」라고 부르던 것과 같은데,「베세르베시」란 「베세르비세르」(무엇이든 잘아는척하는 사람)와 「베시」를 합친 합성어다.

남북합의서 서명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가운데 우리는 통일후 서로를 어떤 신조어로 부르게될지 궁금해진다. 『통일이 되면 가장 먼저 투기꾼들이,두번째로는 전도사들이 북으로 달려가게 될것」이라는 우스갯말이 있는데,북한사람들이 남한 사람들에게 붙일 별명은 「무엇이든 아는체하는 남한내기들」 정도가 아닐 것같다. 남한사람들은 또 광적인 「어버이신앙」에 젖어 자유자재로 울고웃고 화내는 북한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게 될까.

가장 중요한 통일준비는 남·북한인들이 우월감이나 모멸감 대신 합리적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훈련을 하면서 「통일낙원」이전에 저마다 합리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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