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결구도 전향적 변화/내각제 재주창 명분도 제공/야권·YS계,총선·대권관련 「반사적 손해」 우려남북합의서 채택이 국내정치에 미칠 파장은 합의서 이후의 남북관계 진전양상에 따라 실로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진전은 이에 상응한 대응태세를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정치상황이 새롭게 소용돌이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다가 정상회담의 성사 등으로 「통일정국」이 조성될 경우 92년의 잇단 정치일정을 앞두고 있는 국내 정국이 남북문제라는 메가톤급 이슈의 종속변수화할 경우마저 상정해볼 수 있다.
남북문제가 국내정치에 미칠 영향력에서 최대의 관건은 정부·여당의 정국운영 의지일 것이다. 야권이 벌써부터 『남북문제를 정권적 차원에서 이용해서는 안된다』고 쐐기를 박고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치권은 지난 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 몰고온 통일에의 열망이 남북 양측 모두에 의해 정권적 차원에서 악용되었던 쓰라린 체험을 갖고 있다. 남쪽에는 통일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1인 장기집권체제인 유신체제가 등장했고 북측은 「사회주의헌법」을 제정해 김일성 체제를 더 한층 강화했던 것이다.
물론 이는 20년전의 얘기이고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될 전철이지만 남북문제가 지니고 있는 가공할 위력을 보여준 좋은 예인것 만큼은 틀림없다.
남북 합의서가 국내정치에 미칠 영향은 중·단기와 장기적 측면으로 나눠 전망해볼 수 있다.
우선 단기적으로는 여야의 대결구도로 정착된 국내 정치환경을 전향적으로 변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남북문제는 사안자체가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접근을 필요로 하기때문에 정치권이 정파간 이해에 집착하는 모습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
합의서 서명이 있은지 하루만에 여야가 첨예한 대립을 보여왔던 선거법을 타결한 것도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소모와 정쟁의 형태를 펴며 충격흡수장치가 전무하다시피했던 정치권의 모습이 그런대로 내구력 있고 성숙된 모습을 지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는 여권의 후계구도와 14대총선 등 내년의 정치행사에 미칠 영향이다.
여기에서 우선 지적해야 될점은 우리의 통치관행상 남북문제가 여권의 프리미엄적 성격이 크다는 점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3계파가 혼거하고 있는 여권의 현실에서 민주계의 입지가 넓어질 것으로 봐야한다. 후보구도 조기가시화를 주장하고 있는 김영삼대표의 민주계는 후보공세를 위한 시기포착 문제에서부터 남북관계의 추이를 고려할 수밖에 없게됐다. 민자당의 3계파는 합의서 채택을 국가적 경사로 반기고 있지만 남북관계 진전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는 이해가 다를수밖에 없다.
김영삼대표 진영은 후보공세의 일정재조정을 심각히 재검토해야 할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이는 곧바로 민정·공화계의 입지강화로 귀착될 가능성이 높다.
남북문제가 여권의 프리미엄적 성격이 강한만큼 내년봄에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을 경우 여권은 이를 선거전의 호재로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4대 선거중 지방자치관련 두개의 선거일정 문제가 재조정될 가능성도 크다.
야권통합의 여세를 몰아 대권고지의 초석을 깔려하고 있는 김대중 민주당대표가 『해방이후 가장 큰 경사이지만 야당으로서는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는 또하나의 도전』이라고 착잡한 심경을 피력한 사실은 새삼 음미해볼 대목이다.
합의서가 국내정치에 미칠 장기적 전망의 핵심은 남북문제가 국가의 권력구조를 포함한 「내치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즉,개헌문제이다.
정가일각에서는 내각제 개헌추진에 일단 실패했던 여권내의 내각제 주창자들이 남북문제에서 내각제개헌 재추진의 명분을 찾으려 할 것이라는 견해가 일찍부터 있어왔다.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통일에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국가의 근본틀을 바꾸는 문제가 자연스럽게 제기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내각제 개헌의 공론화가 가능할 것이라는 추측이다.
실제로 야권은 꽤 오래전부터 이러한 개연성에 의구의 눈길을 감추지 않고 있다.
지난 가을 남북한 유엔동시가입으로 한때 노태우김대중 신동반관계가 형성됐을때도 비슷한 얘기들이 정가에 파다했다. 그러나 이러한 추측들은 야권이 통합됨으로써 잠잠해져 버렸다.
여권핵심부 관계자들은 남북문제를 고리로 한 내각제 개헌추진 가능성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남북문제의 효율적 대응을 위해서는 국력분산소지가 있는 지역감정 등의 해소방안이 절대 필요하며 국민화합적 차원에서도 권력의 공유가 바람직하다는 여권일각의 시각이 여전한 것 또한 사실이다.
남북문제가 국내정치에 미칠 파장은 이처럼 엄청날 수 있지만 최대의 관건은 합의서 채택이후의 남북관계 진전속도와 진전형태이다.
그러나 남북문제는 수차례의 경험이 말해주듯이 정말로 변화무쌍하다.
따라서 남북문제가 국내정치에 미칠 영향과 결과 역시 예측불허라고 할 수밖에 없다.<이병규기자>이병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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