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시울이 뜨겁다고 했다. 목이 메었다고도 했다. 손바닥이 아픈 것도 잊은채 한없이 박수를 친 사람도 있었다. 어떤 이는 두고온 북녘의 가족을 떠올렸고 어떤 이는 성급하게 통일을 이야기하기도 했다.13일 상오10시21분,남북한간에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서명된 쉐라톤워커힐호텔 1층 남북고위급회담장 주변은 그렇게 감격스러웠다.
분단된지 46년,반복과 대결의 세월을 살아온 우리민족이 화해를 약속한 이 순간은 비록 양측 총리가 서명을 하고 합의서를 교환하는데 필요한 2분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분명 거대한 역사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지난 85년 남북적십자회담이래 수차례 북녘손님을 치러온 이 호텔 종업원의 말처럼 『갑자기 북한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는 정도의 감상적 의미만은 아니다. 불신과 다툼의 무의미했던 시간을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광활하고 생산적인 미래를 비로소 열었다는 점이 이날의 감격을 더 깊게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가다듬어야 하는 것이 있다. 합의서 타결후인 12일 밤부터 13일 아침사이 남북양측은 또 한차례의 줄다리기를 했다.
우리측은 『합의서 서명이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만큼 서명식을 별도로 성대하게 갖자』고 제의했고 북한측은 『그런 것은 나라간의 관계에서나 하는 일』이라며 난색을 표시했다. 결국 양측은 본회담 도중에 앉아있던 자리에서 합의서에 서명·교환하는 「약식」 절충안에 합의했다.
이날의 합의서 서명은 그래서 두가지 교훈을 남겼다. 하나는 서명식 같은 사소한 문제에도 남북의 뚜렷한 시각차와 이해관계가 배어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운 양보를 통해 역사적 사건을 그르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직 난관은 많다. 이달중 있게될 핵문제 협상에서 내년 2월 합의서의 발표에 이르기까기 그리고 합의서의 정신이 완전히 구현될때까지 같은 감동을 유지하기 위해선 이같은 「현실」과 양보의 「지혜」를 남북이 함께 인식해야 한다. 이날의 감격이 설사 만들어진 측면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또 다시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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