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말의 국회날치기 파동은 정말 예기치 못한 사태였다. 아무리 변칙처리가 습관화 되어 예사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그것은 「날치기 상식」조차 벗어난 것이었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기습처리였던 것이다. 그래서 국민이나 야당이 놀라 눈이 휘둥그래졌고 여당 자신도 어리둥절했던 것 아닌가.여론의 화살이 빗발치듯하자 민자당은 재빨리 잘못했다고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물어 원내사령탑인 총무를 바꿨다. 모처럼 순발력을 발휘하고 기민성을 보였다. 민자당의 당내 전략면에서는 「강을 건너는 도중인데 굳이 총무를 바꿔야 했느냐」는 애기도 나왔었다. 쟁점법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정기국회가 끝난뒤에 바뀌도 늦지 않을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누가 총무가 된들 야당의 기본 전략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는 푸념이다.
그런데 그 푸념이 지금 점차 현실로 구체화 되어가고 있다. 소위 정치관계 법안을 두고 민자당은 민주당과 오랫동안 협상을 해보았으나 야당의 반대로 여야합작의 단일안을 만들기는 틀렸다고 판단,여당단독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이다. 야당이 끝내 불응할 경우 단독처리도 불사하겠다는 1단계 경고에 해당되는 것 같다.
민주당은 이에 질세라 쟁점법안을 이번 회기내에 처리하지 않고 내년 1월 임시국회로 넘기기로 결정했다.
지난번처럼 여당이 날치기를 한다면 실력저지 하겠다는 방침도 아울러 정했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여당의 단독처리를 은근히 바라는 속셈도 읽을 수 있다. 선거를 앞두고 변칙처리 등 무리한 짓을 하면 지지표가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야당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지난번의 기습변칙 처리는 야당의 이러한 속셈을 여당이 간파했기 때문에 강행된 것이었다. 야당이 손들어 찬성해줄리는 만무하다는 전제에서 보면 이왕 단독처리를 할 바에는 일찍 서둘러 해치우자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선거시점과 가능한한 멀리 거리를 두는 것이 그 만큼 득표에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계산은 불행하게도 빗나가고 말았다. 안건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욕만 먹었다. 결과적으로 야당만 쾌재를 불렀다.
야당은 이번에도 2주전에 맛본 그 즐거움을 다시 맛보기 위해 여당을 날치기로 유인하는 눈치이다. 지난번 야당의 함정에 제발로 빠져 망신을 샀던 여당은 퍽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다. 우선 정치관계 법안을 여당이 따로 만들어 제출했는데 그 내용중에 야당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항이 여럿 있다.
특히 선거법에서 정당 연설회를 없앤 것이나 정치자금법에서 국고보조금을 유권자 1인당 6백원(야당은 1천원 주장)으로 책정한 것 등이 그것이다.
야당을 협상 테이블로 다시 끌어내기 위한 여당의 계산이 숨어있는 단일안이다.
국회 폐회(18일)를 5∼6일 앞두고 여야가 저마다 머리를 짜내고 짜내서 내어놓은 전략이라는게 바로 이런 것이다. 불과 2주일전의 날치기 파동에 대한 반성도 온데 간데 없어졌다. 국민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가위기도 안중에 없다. 오직 당리당략만이 있을 뿐이다. 만일 이번 국회가 2주전의 파동을 되풀이 한다면 여야가 모두 무슨 욕을 먹게될지 한번쯤 생각이나 해보았는가.
만일 며칠후 두번째 날치기 파동이 벌어진다면 유권자들은 그 광경을 똑똑히 봐두어야할 것이다. 그래야 내년선거에서 표찍을때 참고로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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