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개입등 고수 느긋한 관망/“대소지원 서두를 필요없다”【워싱턴=정일화특파원】 지난 69년간 『세계노동자여 단결하라,당신들에게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밖에 없다』라는 구호아래 끊임없이 세계적화를 위협하던 소련이 8일 죽음을 선언했는데도 워싱턴 정가는 전혀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8일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레오니드 크라브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스타니 슈시케비치 벨로루스 의장 등 세 슬라브공화국이 독립국으로 구성된 연방제의 탄생을 발표하면서 『소련은 이제 해채됐다』고 했을대도 미국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별다른 논평이 나오지 않았다. 다만 베이커 국무장관이 CBS방송에 나와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이제 소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9일의 백악관·국무부 브리핑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질문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기자들은 『소련이 갖고 있는 2만7천개의 핵탄두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대소경제지원은 누구에게 하게 되나』 『고르바초프는 더이상 미국의 외교상대가 아닌가』 등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정부대변인들은 한결같이 느긋했다.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 대변인이나 마거릿 터트 와일러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9월4일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밝힌 대소련정책 5개항만 여유있게 되뇌일 따름이었다.
소련 사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①소련문제는 소련인이 스스로 결정할 것 ②현국경선은 존중하되 만일 어떤 변경이 있으면 이는 평화적인 상호동의하에 조정할 것 ③문제해결은 민주적 원칙과 법의 공정성에 의해 결정할 것 ④개인의 권리와 소수민족의 권리는 보장될 것 ⑤국제법과 국제질서를 존중할 것 등에 위배되지 않게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원칙만 지켜진다면 그 해체과정이 빠르든 늦든 미국이 개입할 입장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정리문제와 각 공화국에 대한 미국의 국가승인 문제 등은 꽤 까다로운 과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에 백악관과 국무부 브리핑에서 깊게 논의됐다.
첫째는 핵문제는
미·소는 이미 각각 보유 핵무기의 50%선까지 상호감축하기로 합의한바 있으며 소련의 핵무기 해체 비용을 위해 미국은 5억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있는 입장이다.
현재 소련은 핵무기를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스 등 슬라브 국가공동체에 가입한 3국 이외에도 우즈베크,카자흐공 등 각 공화국에 널리 산개해놓고 있다. 미국은 무기체제의 감축과 해체를 위해 국방예산중 이미 5억달러를 원조하기로 했는데 고르바초프의 소련 중앙정부가 사실상 없어짐으로써 이 문제를 누구와 어떻게 협의해야 할 것인가를 재검토해야 할 입장이다. 피츠워터 대변인은 핵문제는 「단일통합사령부」에 의해 통제되고 감축돼야 한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
그러나 핵무기 자체가 모두 러시아공화국 영토로 집결돼야 한다든지 어떤 분명한 시한을 갖고 이 핵무기의 해체를 고집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이는 소련 핵문제 역시 각 공화국이 보유핵을 스스로 관장하면서 이를 분쟁의 소지로 쓰지 않는한 해체 및 감축처리 문제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고르바초프나 옐친이 그동안 수차에 걸쳐 『핵관리 문제는 안전하다. 염려 말라』는 언질을 해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는 경제지원문제.
미국은 지난 8월 소련 보수강경주의자들의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고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다시 힘을 얻게 됐을때 식량,의약품 등 인도적 측면의 경제지원을 즉각 실시하겠다고 약속한바 있었다.
9일 기자회견에서 피츠워터 대변인은 『이 인도적 경제원조의 일부라도 소련에 전달됐는가』에 대해 『잘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적어도 확실히 이 원조가 소련에 전달됐다는 분명한 정보는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은 현재 국내 경제침체에 매우 시달리고 있다. 경기회복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이에 따라 부시 대통령의 인기도 형편없이 하락하고 있다.
때문에 당초 미국이 이스라엘측에 약속했던 1백억달러의 주택건립 보조금도 쉽게 풀어낼 수 없는 형편.
그러나 소련의 경우는 처음부터 미국의 지원을 조건으로 이같은 정치변화가 진행된 것도 아니며 따라서 소련이 미국에 대해 구체적인 지원을 요청한 상태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미국이 경제지원을 하지 않더라도 비난을 받을 처지는 아니다.
거대한 소련 제국의 해체와 더불어 미국은 일단 방해받지 않는 세계 최강국의 되는 반사이익을 누릴 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