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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비,사임 명분·시기만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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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비,사임 명분·시기만 남아

입력
1991.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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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정부 이미 통치기능 상실/저항 몸부림 대세역류 역부족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사임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측근중의 측근인 게오르기 샤흐나자로프 정치담당보좌관이 10일 대통령과 그의 진용이 곧 퇴진할 것이라고 밝혀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이미 「용퇴」 쪽으로 정국운영 가닥을 잡고 「시기선택」과 「퇴진명분」에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사실상 퇴진결정은 소연방 체제 및 중앙정부 수호에 매달려온 그의 최근 행적을 감안할때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그는 지난 8월 강경보수세력의 쿠데타 실패로 크렘린궁으로 환궁한 뒤 연방제 수호일념으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 등 쿠데타진압 공신들과 독립성향의 일부 공화국지도자들로부터 모욕과 굴욕을 감내했으며 소연방의 소멸을 선언한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에 대해서도 「최후까지 저항할」 의사를 표명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가 끝내 퇴진쪽으로 급선회한 것은 일단 옐친 대통령과의 크렘린담판서 정국흐름의 대세에 굴복해 「마지막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옐친 대통령은 9일 고르바초프와의 최후담판서 초헌법적인 쿠데타 행위와 다를바 없는 공동체 창설의 불가피성을 일방적으로 통고했으며 「이름뿐인 대통령제」 존속가능성을 마지못해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일정한 연방형태를 띠지않는 국가연합 체제의 수반은 구차스러운 것이라고 판단,명예로운 용퇴쪽으로 마음을 굳힌 것으로 분석된다.

또 고르바초프직할의 중앙정부가 더이상 통치기능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도 그의 퇴진을 앞당기는 주요 요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한때 세계최대의 통치권한을 가졌던 연방정부가 지난 8월의 불발쿠데타 이후 급속히 세력이 약화돼 지방조직을 통제하기는 커녕 러시아공화국의 개정지원으로 근근이 꾸려나가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특히 러시아공화국은 최근 연방의 예산편성과 화폐발행 등 재정적인 실권마저 장악,중앙정부를 껍데기만 남겨 놓았다. 옐친 대통령의 이같은 파상공세로 고르바초프는 더이상 버틸 힘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생명줄을 더욱 죈것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의 방관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우크라이나의 독립가능성을 언론에 흘렸다. 이는 지난 8월의 쿠데타 당시 고르바초프의 즉각적인 복권을 요구했던 부시 대통령의 태도와 우크라이나 방문 당시 소연방붕괴 움직임을 강력 경고했던 그의 발언과도 정면으로 배치되고 것이다.

또한 서방 선진7개국(G7) 런던정상회담에서 대소 지원문제를 놓고 부시 대통령의 미온적인 태도를 공격했던 헬무트 콜 독일총리도 최근들어 고르바초프에 대해 전례없이 냉담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고르바초프의 사실상 사임으로 소련은 완전히 국제사회에서 사라지고 러시아공을 중심으로한 슬라브계 독립국가 공동체가 그 역할을 승계할게 틀림없다. 또한 카자흐공 등 나머지 공화국들의 독립국가공동체 가입 혹은 새로운 정치·경제협의체 창설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소련내 세력재편이 급속히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과정에서 소련연방내 맏형격인 옐친 러시아공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새로운 정치·경제통합의 축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소련내 정정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변수도 없지않다.

우선 소련연방 해체와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에 거부감을 나타내고 있는 군부의 동향. 연방의 소멸은 세계최대 병력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소련군대의 지휘계통을 뒤흔들어 공화국간의 이해대립이 무력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고르바초프라는 소련연방의 마지막 조정자가 사라짐으로써 소련 체제에 강제 편입됐던 1백여 소수민족들이 독립쟁취의 목소리를 높일게 확실하다. 그럴 경우 16개 자치공화국과 6개 자치주를 거느리고 있는 러시아공화국은 또다른 내부분열과 사회혼란,통제불능의 정치위기에 빠져들 것이다.

현재 민족분규를 겪고있는 카프카스지방과 중앙아시아 일부 지방에서는 이 민족세력간 소규모 충돌이 대규모 유혈사태로 번져나갈 가능성도 없지않다.

고르바초프가 연방체제 및 대통령직 고수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닥쳐올지 귀추가 주목된다.<이진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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