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금전출납부/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금전출납부/이병일 편집부국장(메아리)

입력
1991.12.08 00:00
0 0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은 로마력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로마도 기원전 7세기까지는 태음력을 사용했다. 이를 완전한 태양력으로 바로잡은 것이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였다. 그는 기원전 46년 태양력을 택하면서 당시 10월이었던 디셈브리스(DECEMBRIS)를 12월로 하는 등 혁명적인 개혁을 단행했다.그 당시 11월은 현재의 1월인 야누아리우스(JANUARIUS)였고 1년의 끝인 12월은 현재의 2월인 페브루아리우스(FEBRUARIUS)였다. 시저는 당시 로마가 11월인 야누아리우스에 공무상의 시무를 하고 그 이름도 일의 시작을 관장하는 신인 야누스(JANUS)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에 착안해 야누아리우스를 1년의 시작인 1월로,12월인 페브루아리우스를 2월로 하고 나머지는 두달씩 뒤로 물렸다.

이 덕택에 10월이었던 디셈브리스는 1년을 결산하는 12월이란 중책을 떠맡게 됐다. 참고로 디셈브리스는 라틴어의 디셈(DECEM)이란 수사에 어원을 두고 있는데,디셈은 바로 10월을 뜻한다.

영어의 달력인 캘린더(CALENDAR)를 영어사전에 찾아보면 달력이란 명사와 함께 「일정을 정하다」란 동사가 실려있다. 「일정을 정하다」란 동사는 옛날엔 돈을 정산하는 일정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래서 큰 사전에 캘린더의 뜻에 금전출납부란 뜻이 곁들여 있다.

캘린더란 말은 원래 로마의 칼렌다리움(CALENDARIUM)에서 나왔다. 이는 당시 금전출납부를 의미했다. 다시 그 어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초하루를 뜻하는 칼렌다에(CALENDAE)에 다다른다.

로마 사람들은 매달 초하루에 빌리고 꾸어준 돈을 정산했다. 달력은 그 당시 금전출납 상황을 기록해 두는 중요한 메모판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연말이면 각 은행에서 달력을 만드는 것도 우연으로 만은 볼 수 없다. 달력엔 우리들이 술외상을 마시는 경우 쉽게 입에 올리는 연말정산의 뜻이 담겨있다.

어느새 금년 달력도 딱 한장이 남았다. 그나마 거의 3분의 1이 잠식 당했다. 사무실에 걸려있는 한장 남은 달력도 한해란 세월을 말해주듯 색깔이 변해 여기저기 눈에 띄는 새해 달력과 비교하면 너무나 초라하다. 세상만사 낡아지면 뒷전으로 밀려나게 마련이지만 다시한번 지나간 나날들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도 역시 연말이면 틀림없이 끌어내 사용하게 되는 「다사다난 했다」는 정해진 문구가 떠오른다. 국제적으로는 소련연방의 붕괴 등 국제질서의 변화 등을 들 수 있고 국내는 유엔가입·지자제 선거·인플레·과소비·무역적자 등 좋은 일 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았다. 특히 불안한 경제상황은 내일을 걱정스럽게 하고 있다.

이것은 지난 한해동안 우리나라의 캘린더 즉 금전출납부가 완전히 뒤틀렸음을 뜻한다. 금전출납부는 넘쳐도 또 모자라도 안된다. 딱 맞아 떨어져야 한다. 넘쳐 잘못 관리하면 과소비 등 허영에 인플레가 찾아들고 모자라면 경기가 침체돼 실업자가 늘어나는 등 깊은 수렁에 빠진다.

우리사회는 1년동안 넘치지도 못하면서 넘치는척 허세를 부려 과소비에 무역적자가 늘어나는 등 모든것이 뒤죽박죽돼 내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우리의 금전출납부는 단시간에 정산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다. 흐름의 가닥을 잡아 하나하나 맞춰 나가야 한다. 개운한 마무리되는 깔끔한 재출발의 발판이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엄동설한에도 적당히 싹을 틔워 봄에 결실을 맺는 보리의 절제력과 참을성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