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부정적 입장이 큰 걸림돌/불·독에 「유럽기득권」 뺏길까 우려/정치·통화 통합등 “비현실적” 제동【런던=원인성특파원】 정치 경제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유럽공동체(EC) 12개 회원국의 입장은 크게 보아 적극적 통합론과 소극적 통합론으로 갈라져 있다. 독일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유럽대륙의 11개국가들은 쟁점에 따라 약간의 견해차는 있지만 공동시장과 단일통화를 채택하고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연방제를 지향하는 적극적 통합론의 범주에 속한다.
외롭게 소극적인 통합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영국은 대륙국가들 입장에서 보면 통합에 큰 장애물이 되고 있으나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무시해버릴 수만도 없는 골치아픈 존재이다. 영국만 아니라면 통합의 발걸음을 재촉할 수 있지만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있는 영국을 떼어놓고 갈수도 없고 그렇다고 영국의 요구를 모두 수용할 수도 없는 대륙국가들의 입장이다.
영국이 적극적인 EC통합을 반대하는데는 나름대로의 이유와 명분이 있다. 첫째는 영국 특유의 실용적 경험론이다. 경제 금융통합만 하더라도 서로의 경제력의 차이가 엄존하고 실업률과 인플레율 등이 엄청난 편차를 보이고 있는 마당에 인위적으로 단일통화를 채택하고 유럽중앙은행에서 획일적으로 재정 금융 정책을 시행하는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제기한다. 따라서 독일과 프랑스 등이 추진하듯이 경제 금융통합의 단계를 연도별로 설정해놓고 억지로 끌어맞추려 하기 보다는 각국의 경제적 차이를 좁히는 노력을 먼저 한뒤 그 결과를 보아가며 단일통화의 채택여부를 정하는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정치통합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외교와 국방문제를 다수결에 의해 공동으로 결정하자고 하지만 걸프전쟁과 유고내전에서 보듯 회원국간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무리하게 조정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다수결로 결정해봐야 강제력을 갖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지금같은 정부간 협의채널을 강화해 사안별로 회원국간의 의견 차이를 좁혀나가는게 현실적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EC가 궁극적으로 연방을 지향하자는 입장에 대해서도 소련과 유고 등의 예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자기민족의 일은 민족 스스로가 결정하고자 하는 것이 역사적 현실인데 이에 역행해 역사와 언어,인종이 다른 국가들을 무리하게 하나로 묶으려는 것은 명분에 치우친 이상론이라고 반박한다.
영국은 이같은 자신의 입장을 강화하기 위해 EC의 적극적인 통합 대신 확대론을 펴고 있다. 새로 민주화를 추진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있는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소련내의 각 공화국,발트3국 등에도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이 통합을 반대하는 또하나의 이유는 한번도 주권을 상실해 본적이 없다는 역사적 특수성에서 비롯된다. 독일의 침략을 받은 프랑스나 근세에 들어서야 통일을 이룬 독일 등과는 달리 영국인들의 주권의식은 유별나게 강하다. 통합에 반대하는 영국 정치인들은 「영국인들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민족으로부터 통치를 받을 수 없다」거나 「우리가 낸 세금을 영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왈가왈부 할 수 없다」며 원초적인 국민감정에 호소하곤 하는데 이같은 주장은 영국민에게는 꽤 설득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런 주권의식 때문에 연방이라는 용어와 파운드가 아닌 다른 통화를 영국화폐로 사용한다는 사실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래서 영국은 경제 통화 통합의 2단계에서 중앙집권적 권한을 갖는 유럽 중앙은행을 설립하는 것과 외교·국방 등의 문제를 다수결로 결정하거나 유럽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은 주권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라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영국이 EC통합에 과민반응을 보이는 것은 기득권의 상실을 우려한 측면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영국은 미국과의 특수관계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해 왔으나 거대 유럽이 탄생할 경우 라이벌인 독일과 프랑스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반면 자신들의 목소리는 줄어들 우려가 있다. 또 경제통합이 추진되면 독일의 마르크화가 주도권을 잡게 되리라는 엄연한 현실은 영국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큰 이유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영국은 통합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현실적인 대응책을 놓고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다. 영국안에 크게 세가지의 입장이 있는데 노동당과 자유민주당 등 야당과 보수당의 히드 전 총리 등은 영국이 통합과정에 적극 참여해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적극론을 펴고 있다. 반면 대처 전 총리를 비롯한 회의론자들은 단일통화의 채택여부를 국민투표로 결정하자고 주장하며 현 내각에 강한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존 메이저 총리 등 현실론자들은 영국의 고립은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협상을 통한 절충을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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