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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전·후 50년/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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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전·후 50년/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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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 어느 날의 홍콩­. 청조타도를 획책하고 있던 현대중국의 아버지 손문은,어떤 연설회장에서 5척단구의 서양인 꼽추를 만난다. 인사를 자청한 꼽추가 『내가 당신을 돕겠소. 당신은 성공할 것이오』라고 했던 것이다. 근시가 지나쳐 『반소경이나 다름 없는 그를 돌려 보낸뒤,손문은 측근에게 물었다. 『저 꼽추,누구지?』 대답은 현존하게 세계의 군사전문가중 최고의 천재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손문은 그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다. 때가오면 그를 군사고문으로 모시겠노라고도 했다. 그러나 꼽추는 말했다. 『당장 그렇게 하시오. 그래야 당신은 성공할 것이요』손문의 자서전은 미국이 낳은 기인 호머 리(1876∼1912)와의 만남을 이렇게 적고 있다.

그때 호머 리의 장담대로 10년뒤 신해혁명(1911)이 일어나,청조가 무너진다. 그 사이 그는 미국 화교사회에 비밀 군사조직을 만들고,군자금을 거두어 혁명을 돕는다. 남경에 공화국 정부가 설 때는 손문의 군사고문으로 혁명군을 지휘한다.

호머 리가 기인인 것은,그의 모든 행적에서 잘 드러난다. 신체적인 제약때문에 단 하루의 군경력도 쌓지 못했고,정규 군사교육을 맏아 본 적도 없는 그가,오로지 독학으로 전략·전술에 달통 했다는 것부터가 희한한 일이라 할 수밖에 없다. 스탠퍼드대학 재학중에 이미 화교사회 비밀결사에 가입했던 그는,1990년 화교들 성금을 여비삼아 중국으로 건너 간다. 그 무렵 중국은 영화 『북경의 55일』로도 잘 알려진 「의화단의 난」이 한창이다. 호머 리는 곧 정부군 지휘관으로 참전,지금으로 치면 중강계급을 받는다. 24살의 꼽추가 「장군」이 된 것이다. 그러나 서태후의 미움을 산 그는,이듬해 홍콩으로 달아나 손문을 만난다.

일본을 거쳐 귀국한 그는 1908년에 책 한권을 낸다. 이름하여 『무지의 용기』. 이 책에서 그는 일본의 팽창을 경고하고,일본이 하와이의 진주만과 필리핀을 기습할 것임을 예언한다. 그의 책은 일본에서도 번역이 나와 24판을 거듭했고,일본군 장교의 필독서로 된다. 독일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러시아혁명을 꿈꾸던 레닌은 이 책의 독일어 번역본을 읽고 그의 통찰력을 극찬한다. 필리핀에서 전쟁이 벌어졌을때,그의 책은 침공군과 방어군 참모들에 공통된 교과서로 된다. 전투의 경과는 그의 예언대로 진행이 됐고,그 예언대로 마닐라는 3주만에 함락된다.

대개의 정통적인 사학자들은 호머 리를 허풍선이로 친다. 그는 인종주의,군국주의 신봉자였다. 태평양 서안에 걸친 그런 경향이 이 진주만과 히로시마 원폭으로 귀결됐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20세기를 여는 시기에 호 머리와 같은 기인이 등장했고,『무지의 용기』와 같은 예언이 나왔다는 사실은 오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같은 생각은 『무지의 용기』보다 한해 앞서 나온 F·A·매켄지의 『한국의 비극』을 읽고 나서 더해진다. 매켄지는 이 책의 종장을 다음과 같은 예언으로 맺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장래,동방의 장래,어떤 점에서는 세계의 장래가,앞으로 (일본의) 군국주의자와 평화적 팽창논자 어느쪽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달려 있다. 만일 군국주의자가 주도권을 잡는 경우라면,한국에 대해서보다 더 가혹한 통치를 할 것이고,만주침략을 차차 증대시키며,중국에 대한 간섭을 증대시킬 것이고,끝내는 결말을 종잡을수도 없는 엄청난 분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과연(이런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숭고한 목적을 선택할 수가 있을 것인가?』

매켄지는 1904년 영국 데일리 메일지의 특파원으로 처음 한국을 방문,노일전쟁을 1년간 취재하고,다음 다음해 다시 한국을 찾아 일본 통감치하 한국의 참상을 보게 된다. 이때의 취재경험을 『한국의 비극』으로 엮었던 그는 1919년 3·1운동을 보고나서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을 다시 쓴다. 그는 이 두번째 책에 전저의 결구를 얾겨 싣고,더 절박한 예언과 경고를 덧붙인다.

『오늘날 나약하게 행동한다면,거의 틀림없이 30년안에 극동에서 큰 전쟁을 겪게 될 것이다. 서양 여러나라중 그 전쟁에서 가장 큰 부담을 질 나라는 미국이다』

매켄지는 호머 리 같은 허풍선이 군사논자가 아니다. 미·일 필전논을 펴기보다는,「숭고한 목적」을 위한 일본의 선택에 기대를 건다. 호머 리처럼 미국의 군비를 독촉하기보다는,기독교 세계의 양심과 정의감에 호소한다.

그렇게까지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의 예언이 그렇게까지 일치하고,불행하게도 그 예언이 하나처럼 맞아 떨어진 까닭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두 사람의 에언이 나온 20세기 첫 10년대의 시대배경에 있다. 더 꼬집어 말하면,청일·노일 전쟁을 차례로 어긴 일본이,「숭고한 목적」을 깨닫지 못한채 동아시아의 패권을 꿈꾸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진주만 50년의 진정한 승자로 일컬어지는 오늘의 경제대국 일본은 과연 「숭고한 목적」에 눈을 떳다고 할 수가 있을까. 더하여 후퇴하는 미국,무너지는 소련,뒤처진 중국,「대동아공영권」으로 재편성되는 동남아,궁한 나머지 일본을 쳐다볼 수 밖에 없는 북한… 이같은 20세기 마지막 10년대 동아시아 형세가 뜻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와중에서 우리는 일본의 포위망 속에 빨려들 공산이 크다. 국제정치에 내재하는 힘에 밀려 고립무원이 된다. 남는 것은,그때와 양상은 다를지 모르나,「한국에 대한 보다 더 가혹한 통치」일 수 밖에 없다. 20세기 첫 10년대와 무엇이 다른가.

굳이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진주만이후 50년」에 빠드려서 안될 것이,「진주만 이전 50년」을 함께 생각하는 역사인식이요,그때의 전철을 오늘에 살피는 우리로서의 시각이다. 그때의 「현대묵시록」을,그래서 되씹는 것이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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