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0년전 일이다. 민정당이 창당되고 이에 대응해서 민한당이 모습을 드러낼 무렵이었다. 선거도 하기전이었지만 누군가에 의해 여당과 야당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군부세력 중심의 민정당은 이미 집권 여당이었고,구야세력 중심의 민한당은 스스로 전통야당임을 내세우고 있었다.
창당체제를 무너뜨리고 정상체제를 구축하는 작업이 한창일 무렵 민정당의 창당주역이자 실력자인 K씨는 기자들에게 자기자신은 무슨 자리를 맡으면 좋을까하고 은근히 타진했다. 그는 사무총장과 원내총무중 어느 자리가 자신의 정치적 장래를 위해 유리할 것인지 저울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민정당의 상대당인 민한당에서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졌다. 창당 주역이자 실력자인 S씨는 민정당의 실력자 K씨가 사무총장과 원내총무중 어느 당직을 가질 것인지 궁금해 했다. K씨가 사무총장을 맡으면 S씨도 사무총장을,K씨가 원내총무자리를 차지하면 S씨도 원내총무직을 택할 참이었던 것이다. 오래지 않은 탐색끝에 결국 K씨와 S씨는 모두 사무총장을 맡았다. 창당 초기였기 때문에 조직을 다지는 그자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지금 애기하려는 것은 사무총장자리가 아니라 원내총무직의 중요성이다. 한국적인 정당의 특수성 때문에 사무총장이란 자리가 돋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민주주의와 의회주의라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본다면 원내총무가 훨씬 중요한 역할을 한다. 미국의 민주당이나 공화당에서는 상설운영되는 사무처가 없기 때문에 사무총장이란 직책이 없다. K씨가 민정당의 사무총장으로 앉은뒤 미국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때 K씨는 미국 의회에서 원내부총무로 같이갔던 L씨 보다 서열이 낮은 예우를 받아야했다. 미국에서 원내총무를 얼마나 중요한 자리로 보느냐하는 일화이다.
우리 국회에서도 원내총무란 정말 중요한 자리이다. 국회의 권한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자리는 그만큼 중요성이 더해지는 것이다. 다수당의 총무는 더더욱 중요하다. 국회의 수장으로 의장이 있지만 의전상의 기능이 더욱 강조될 뿐 사실 국회의 스타요 꽃은 여당의 원내총무이다. 중요하고 화려한 만큼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선 당내의 소속 의원들로부터 인격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존경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당내 각 파벌간의 역학관계를 잘 감안해서 균형과 조화에 신경을 써야한다. 그리하여 원내전력이나 대책에 관한한 소속의원과 계파들간에 항상 공감대가 이뤄져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국회운영에서 총무가 힘을 얻을 수 있다.
청와대나 행정부와의 관계에서도 서로 소리나지 않게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우리 정치구도에서 정부여당,정부국회,국회여당의 관계는 특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국회운영에 청와대가 종종 버튼을 누르는 일이 다른 나라에서는 없다.
여당의 원내총무는 무엇보다 대야관계를 잘해야 된다. 대화의 기술,협상의 솜씨가 잘 다듬어져 있지 않으면 언제나 야당과 사사건건 대립만 하다가 끝나 버리기 일쑤이다. 소속의원,당내파벌,청와대,행정부,그리고 야당과의 관게를 잘 유지하는 것 이외에 국회라는 커다란 틀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의회주의정신이 항상 배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기국회폐회를 불과 2주 앞두고 여당의 원내총무가 바뀌는 보기드문 해프닝을 보면서 새삼 여당총무론을 읊조려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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