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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이후 50년/김경원칼럼(기류조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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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만」 이후 50년/김경원칼럼(기류조류)

입력
1991.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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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04년 2월8일 캄캄한 밤중에 여순항의 러시아 함대를 기습공격함으로써 노일전쟁을 일으켰고 1941년 12월7일에는 진주만을 기습공격함으로써 미국과의 전쟁을 일으켰다.그런데 아이로니컬하게도 미국은 노일전쟁에서 일본에 비교적 우호적인 입장을 취했었으나 1941년에는 일본과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었고 2차 대전이 종결된 후에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과 밀접관 관게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에는 미일관계가 또다시 크게 악화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일본에 원자탄을 떨어뜨린데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는가 하면 일본정부 대변인인 진주만공격에 대해 일본이 사과할 이유가 없다고 대꾸하고 있다.

그러면 일본은 또 다시 미국과 대결하게 될 것인가?

1981년 3월 와인버거 국방장관은 동경을 방문한 자리에서 일본이 해·공군을 증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앞으로 10년간 일본이 방위예산을 매년 10%씩 늘려나갈 것을 제시했다. 이런 제안은 레이건행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책이지만 원래는 카터행정부에서부터 구상되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앞으로 소련의 군사적 위협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았으며 특히 페르시아만을 중심으로 하는 중동지역이 크게 불안해질 것으로 내다보았다. 따라서 중동에서 위기가 발생했을때 미국은 인도양과 페르시아만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 군사력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는 일본이 소련의 극동함대가 태평양으로 출동하지 못하도록 동해의 해협들을 봉쇄하고 괌에서 필리핀에 이르는 서북태평양지역의 해상통로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런 구상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1981년 5월 워싱턴을 방문한 스즈키 일본수상에게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과 일본이 「적절한 역할분담」을 할것을 제의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미국이 예상한대로 전개되지 않았다.

일본은 미국의 권고대로 지난 10년간 군사력의 증강을 추진해 왔지만,바로 그런 정책의 기본전제가 되는 소련의 위협이 미국의 예상을 뒤엎고 그만 소멸되어 버린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더 이상 일본 군사력이 증강되는 것을 원할 필요가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일본은 심각한 경제적 갈등을 겪고 있다. 물론 미일간의 경제적 마찰이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과거 냉전시기에는 소련에 공동대처한다는 전략적 필요성 때문에 미국은 일본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필자가 워싱턴에 근무하던 시기(1985∼88)만 하더라도 대일 경제문제에 대한 미 상무성의 결정을 국방부가 백악관에 강력히 건의하여 수정 또는 후퇴시키는 예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군사논리는 더 이상 먹혀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냉전이 종식되고 미소관계가 개선되었을뿐만 아니라 소련이 붕괴되고 있는 마당에 미국이 자신의 경제이익을 양보해야 할 정도로 일본의 군사협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미일관계는 하나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고 할수 있다. 그리고 만일 양국관계가 지금보다 더 악화된다면 미국에서는 주일미군을 전면 철수하고 미일 안보조약도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넓은 지지를 받게 될지도 모른다. 특히 미국은 앞으로 일본이 국제무기 수출시장에 까지도 뛰어들 가능성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미일관계가 최악의 상태까지 가게 되면 우리도 엄청난 어려움에 빠지게 될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일본이 미국과 대결하는 상황이란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이 현재와 같은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어질 수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서 생각하면 미일간의 대결은 과거의 냉전상황보다 훨씬 더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

미일간의 대결관계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양국간의 경제관계가 완전 붕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미일의 책임에 속하지만 또한 양국간의 경제관계가 원만하게 조정될 수 있는 국제적 환경도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루과이협상의 성패는 경제적으로 심각한 문제일뿐 아니라 세계전략 균형을 유지하는 문제와도 직결되어 있다.

그리고 미일간의 대결을 피하려면 일본이 독자적 군사역할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만일 많은 아시아지역 국가들이 일본 이외의 다른 어떤 강대국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게 된다면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위험한 수준까지 커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이 점은 특히 중국과 러시아 지도자들이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일본은 지나친 군사대국이 되는 경우 비극적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진주만의 교훈을 진정으로 깨달아야 한다. 일본이 자신의 경제력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하기를 원하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일본이라는 나라가 자신의 「국가이익」에만 집착하는 작은 나라가 아니라 보편적 가치와 국제적 규범을 위해 일본자신의 단기적인 이익을 희생할줄 아는 큰 나라가 되어야 하며,또 그런 큰 나라가 되었다고 주변국가의 국민들이 믿을 수 있도록 일본 스스로가 행동해야만 한다.

앞으로 우리는 이 지역의 안정과 한반도의 장래를 생각하면서 무엇보다도 미일관계의 향배를 가장 주의깊게 지켜보면서 대처해 나가야 할 줄 안다.<사회과학원장·전 주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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