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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 예산심의/이유식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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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 예산심의/이유식 정치부기자(기자의 눈)

입력
1991.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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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새벽3시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새해 예산안에 대한 심사보고가 진행되던 무렵 야당의석에서 자조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야 높은 사람들이 시키는 대로 하면되지 보고는 무슨 보고냐』 또 조금앞선 시각 막 끝난 계수조정소위 회의장을 나서던 여당의원은 지친듯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올해 계수조정은 기록감이다. 당사업이든 개인 민원이든 단 1건도 증액 반영치 못하고 오직 칼질만 해댔으니…. 내년부터는 예결위원 희망자를 찾기 힘들것 같다』

같은시각 기획원과 재무부 관계자들은 한숨을 돌리면서도 얼굴은 잔뜩 부어있었다. 『억지로 짜 맞추긴했으나 이런 식의 예산심의가 계속되어서야…』

의원들의 변칙적 「떡고물」 기대가 무산된 일부 긍정적 측면을 제외하면 이같은 여야의원 및 정부의 푸념은 결과적으로 올 예산심의가 얼마나 졸작이었던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표면상 총예산대비 삭감률이 지난해(0.7%) 보다 높고(0.9%) 여야가 모처럼 법정시한을 넘기지 않도록 나름대로 고심의 흔적을 남기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야 및 정부 등 3자가 서로 못이긴척 양보하는 제스처로 만들어 낸 새해 예산은 한마디로 「국민예산」이라기보다 파당적 「정치예산」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 같다.

여당이 예산회계의 원칙을 어기고 세법을 날치기처리,세입부터 확정한 다음 세출을 이에 꿰맞추는 식으로 심의가 진행된게 이러한 파행의 첫째 이유임은 물론이다.

여기에 예산항목의 낭비적·정치적 요소에 대한 엄밀한 검토보다 3천억원 문턱의 총액삭감 규모에만 급급했던 야당도 한수 거들고 자신들만 국가경영능력이 있는양 경직된 사고를 보였던 정부도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설득과 대화보다 무조건 얼마를 깎으라는 야당과 못깎겠다는 정부여당의 힘싸움앞에 국민부담의 경감과 예산효율의 극대화 소리는 어디에서도 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세금경감보다 벌금을 깎아 세입을 줄이겠다는 발상이 버젓이 채택되고 깎은 만큼 추경을 편성하면 된다는게 우리 예산의 현실이다. 법정시한을 또 넘겨 모든 국민이 곤히 잠든 새벽에 예산안을 부랴부랴 처리한 배경에 행여 이런 자괴감이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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