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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비의 사회학/오인환(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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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소비의 사회학/오인환(조망)

입력
1991.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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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과소비,퇴폐가 강성했던 대로마를 망하게 했다는데 이러다가 한국도 어떻게 되는게 아닐까. 과소비망국론이 그 어느때보다도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시키고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과소비가 빠른 시일내에 진정되리라는 징후는 보이지 않고 있으며,또 쉽게 잡히리라고 믿고 있는 사람도 극히 드물다. 단속을 펴는 등의 대증요법 정도로는 고치기 어려운 고질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일반적으로 말해 오늘날의 과소비는 무분별한 사치와 낭비를 일삼는 일부 불로소득계층이 주도하고 있다는 인식에 포인트가 있다. 부동산이나 증권 등 투기와 부정으로 돈을 모은 이들의 부도덕한 소비형태는 끝내 일반국민까지 오도하는 결과를 빚고 있고,그들의 발호를 근원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금융실명제,토지공개념의 도입 등 제도를 마련하지 못한 6공 정부가 책임의 일단을 질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그러나 그같은 논법만으로는 과소비진정에 관한 진정한 해법을 끌어내기가 어렵다. 코끼리의 다리나 코를 만지면서 코끼리의 모습을 그리겠다는 눈가린 사람과 다를바가 없는 것이다.

이 나라의 5천년 역사는 절대빈곤의 계속이었다. 때문에 이 나라 백성들은 째지게 가난한 속에서 살아남는 지혜와 끈기를 체질화 할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넉넉함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풍요속에서 짜임새있게 사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주린 창자속에 갑자기 기름기가 들어가면 배탈이 나듯이,5천년 역사에서 처음 가난을 면하고 보니 이 민족은 지금 과소비라는 이름의 설사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할수가 있는 것이다. 그같은 현상에 대한 외국인의 관찰은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그들은 한국사람들이 가난했을때는 배를 채워야 하겠기에 열심히 일할 수 있었으나 배가 부르면 더이상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유럽이나 일본처럼 여유가 있을때도 근검절약하는 철학과 전통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는 분석인 것이다.

○근검절약정신 부재

박정희 시대의 갑작스러운 종막은 정치적으로는 다행이었다. 그의 철권통치아래서 희생당했던 정치에 대해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할수가 있다. 그러나 경제에 관한한 같은 소리가 나올 수는 없을 듯하다. 특히 과소비,사치풍조,게으름병의 확산에 관한한 아쉬움과 안타까움속이 더 무거운 비중을 차지한다. 「하면 된다」(Candoism)는 국민적 합의를 형성시켜 모두가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경제중흥의 동인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은 기계처럼 장시간 일만 할수는 없는 법. 일하면서 즐기기도 하는 중간단계를 계도하고 가르칠 수 있는 기간이 있었어야 했다. 궁정동을 뒤흔든 총성은 우리 사회가 대뜸 먹고 마시고 덜 일하며 게으름을 피우는 풍조로 직통하는 길을 민주화의 이름으로 열어준 셈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드린데는 외곬로 빠지기 쉽고 전염력이 강한 한국특유의 군중심리도 한몫 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남들은 하는데 나라고 못하랴」면서 사람들은 다투어 과소비의 소용돌이속에 휩쓸려 들어가게 마련이었다. 의식주의 소비수준을 높이는 것이 신분상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착각한 중산층의 허위의식도 주요요인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의 과소비도 다른나라에 유례가 없다. 지금 이 나라에는 몇억 몇십억을 뿌리고도 눈썹 하나 끄떡없는 수천수만의 졸부 정치지망생이 선거풍토를 타락시키고 있고 많은 유권자가 그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며 스스로 부패구조의 먹이사슬을 자초하고 있는 현실이다.

○최종 해결책은 교육

더군다나 내년에 우리앞에는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이 넘쳐흐를 4개의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덩달아 뛸 과소비를 생각하면 이만저만한 걱정거리가 아니다. 정부는 돈이 덜드는 선거가 되도록 해야한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말하고 있지만 정권의 향방을 놓고 얌전하게 있을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 불신부터 제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6공은 풀어주고 내주는 역사적 역할때문에 과소비와의 싸움에서 처음부터 불리한 여건에 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직무유기를 할수는 없는 일. 젖먹던 힘을 다해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권력을 동원하는 단속 차원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구체적이고 일관성있는 정책목표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자동화를 위한 기계설비의 투자,격심한 국제정보화 시대에 대비한 정보산업의 확장 등 미래설계와 당장 파기해야할 과소비 패턴을 선별처리할 수 있는 슬기와 추진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6공은 정권의 성격도 그렇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을 별로 갖고있지 못하다. 때문에 과소비를 포함한 6공의 미제현안은 고스란히 다음 정부의 부담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국민에게 세금을 더 내고 아껴쓰고 허리띠를 조르라고 닦달하는 인기없는 정책만을 펴야할 숙명이 다음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 악역을 피할수가 없다는 점에서 차기대통령은 많은 국민이 무조건 따르고 복종할 수 있는 카리스마와 도덕성을 지녔으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할수가 있다. 그러나 4천만으로 표현되는 대삼림에 붙은 불을 끄려면 맞불을 놓아야 하는데 대통령 혼자의 힘만으론 역시 역부족이다. 종교지도자가 국민적 대각성을 끌어내주는 정교합작의 단계가 필요할지 모른다. 하나 다종교 국가에서 종교의 대국민 영향력과 설득력은 한정되게 마련이라는 한계론이 뒤이어 나올수가 있어 역시 껄끄럽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교육밖에 없다. 유치원·국민학교때부터 철저하게 절약감소를 가르쳐 과소비 풍조를 뿌리부터 근절시킬 도리밖에 없다. 그게 한국적 과소비학의 처절한 결론이다.<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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