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보건법」 제정문제가 보류결정 1년도 못돼 내각에서 재론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법무부장관이 범죄예방차원에서 입법의 필요성을 주장한 모양이다. 전국의 정신질환자수가 90여만명이고 그중 입원대상자만 10만명으로 추산되는 현실에 비추어 국가나 사회가 복지 및 의료시혜차원에서 그들을 돌보고 책임져야한다는 소리가 높은때이니 만큼 법제정의 필요성이야 누구나 공감할만 하다.그런데도 걱정스러운 것은 이처럼 필요성이 절감되는 법제정추진이 방향을 잘못 잡고 있지않나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지난 85년 첫 초안마련이 주무부서인 보사부에 의해 추진된이래 당시의 정치상황과 맞물려 심각한 인권침해 우려때문에 번번이 보류되어온 사정을 감안한다면 입법의 재추진을 위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과 근본적인 자세전환이 요구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주무부서도 아닌곳에서 범죄예방이란 명분이 앞세워져 해묵은 걱정과 의혹을 되살리고 있는 것이다.
「정신보건법」을 제대로 만들려면 의당 치료와 재활이 앞서야 한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보다도 우선 당장 시급하다는 이유만으로 범죄예방 등을 위한 강제수용과 격리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인권침해 등 악용소지에 대한 국민적 우려가 풀릴길은 더욱 멀어진다 하겠다. 지난 2월 정부·여당의 당정회의에서 법안추진을 보류키로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의혹을 풀어줄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음을 정부당국은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당시 의료계와 인권단체에서는 치료보다 격리를 위주로 한 법안재고와 강제입원조항마련에 앞서 정신질환자를 감정하는 전문기구설치,수용시설에 대한 감독기능강화 등 제도적 장치마련의 선행을 주장했었다.
또다른 근본적 쟁점은 정신요양원의 인정문제이다. 그동안 국가적으로 정신질환자를 무작정 방치해둔 결과 무분별하게 생겨난 것이 정신요양원인데 정신질환자를 수용하는데 큰 몫을 해온 이들 시설이 사실은 의료기관이 아닌 복지시설일 뿐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정부로서야 보다 국가재정을 덜 들이는 방편으로 시설·인력을 보완시키는 수준에서 요양원의 존재를 인정하고 어느정도의 치료기능까지 주겠다는 방침이었는데,이 점이 전문의료계와 마찰을 빚어왔던 것이다.
차제에 거듭 강조해둘 것은 정부당국의 발상의 전환이다. 버림받기 일쑤인 정신질환자들을 나라에서 성의껏 책임지겠다는 각오와 예산상의 뒷받침마저 확보할 정도의 실질적 태세를 갖춰나갈때 법제정은 하등 문제거리가 될수없음을 알아야 한다. 범죄예방도 중요하지만 정신질환자의 인권이나 치료는 더욱 중요하다. 그리고 정신질환자부터 치료하고 고쳐내면 범죄예방은 저질로 될수도 있는 것이다.
「정신보건법」은 필요한 법이지만 그 제정을 위해서는 가지부터가 아니라 뿌리부터 접근해가는 현명함을 이번에야말로 한번 보여주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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