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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누크공 서방언론회견 본지 국내독점 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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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누크공 서방언론회견 본지 국내독점 전재

입력
1991.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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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시장체제로 전환해야”/외자유치 수년내 경제재건 가능/민주화 최선… 입헌군주제 좋을듯/크메르루주 시대변화 인식… 정책 바꿔야/일 투자등 경제적 진출·자위대 파병 환영지난달 17일 13년간의 해외망명 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캄보디아의 민족지도자 노로돔 시아누크공은 귀국 3일만인 지난 20일 뉴스위크 전 동경지국장 버나드 크리셔를 자신의 왕궁으로 초청해 회견을 가졌다. 다음은 권좌복귀후 서방언론과의 최초회견인 크리셔씨의 시아누크회견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이 기사는 국내에서는 본보와 코리아 타임스지가 독점 전재한 것이다.<편집자주>

­크리셔지 국장=권좌에서 밀려난 군주나 정치가가 재집권한 뒤 이전의 정적들과 손을 다시 잡는 경우는 전례가 없던 일인데….

▲시아누크공=나는 단 한순간도 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뜻을 저버린적이 없습니다. 항상 백성들과 고통을 같이 해왔죠. 엄밀히 말해 폴 포트는 나를 축출한게 아닙니다. 도리어 날 두번씩이나 찾아와 최고지도자로 남아 줄것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의 통치하에서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살아가는가를 알았기 때문에 그의 제의를 거절하고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나 크메르루주의 정치적 양심수로 남기로 결심했던 겁니다.

그리고 망명저항 지도자로서 나는 해외생활 와중에도 매년 국내 해방구의 군대나 주민들과 긴밀한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나는 항상 정직하고 청렴했음을 자부합니다. 많은 국민은 나를 캄보디아 근대화의 장본인으로 생각하며 나의 통치기간을 「황금시대」로 비유하기도 합니다. 이런 연유로 훈센 총리와 공산당지도자들은 내가 귀국해서 대내적으로는 국가재건을,대외적으로는 중립 및 비동맹을 추구하는 소위 「사잉컴」 정책을 계속 수행해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캄보디아는 프랑스 식민통치,왕정,론놀의 반동통치 및 크메르루주의 학정 등 여러차례의 격변기를 거쳤습니다. 왜 이전의 정권들이 오래 존속하지 못하고 몰락했다고 보십니까.

▲론놀정권은 아주 형편없었습니다. 론놀의 실수는 자신의 권력기반이 군주제로부터 비롯됐는데도 불구하고 군주제를 폐지한 것입니다.

폴 포트는 매우 잔인할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저능아였습니다. 만약 그가 훈센처럼 공산당을 이끌었다면 오랫동안 정치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훈센과 현 프놈펜정권의 강점은 오늘날이 격변의 전환시대임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나와 더불어 캄보디아를 근대화된 복지국가로 재건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들은 애국자입니다. 훈센과 이들 공산당지도자들은 몰락하는 소련에 더 이상 의존할 수없고 베트남 또한 자국의 경제건설을 위해 미국과 중국에 손벌리는데 급급한 실정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어떤 사회의 건설을 꿈꾸십니까.

▲지난 50∼60년대에는 자주국방,영토탈환 및 근대화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또한 한때 은행을 국유화하는 등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자급자족은 가능했지만 경제발전은 미흡했습니다.

홍콩의 한 점성가는 내가 74세로 생을 마감할 것이라고 예언한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평화롭고 번창하는 캄보디아를 건설하는데엔 앞으로 4년 밖에 안남은 거죠. 남은 4년동안 자유민주주의와 다당제의 토대마련에 힘쓸 작정입니다. 난 개인적인 권력따위엔 개의치 않습니다. 소망이 있다면 「조국독립의 아버지」나 「평화와 화해의 화신」으로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아버지」라는 좋은 평판을 듣고 싶을 따름입니다.

경제적으로 캄보디아가 급속성장을 원한다면 태국을 모델로 삼아야할 것입니다. 왜냐면 태국국민은 높은 국민소득으로 경제호황을 누리며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태국에 부패와 타락이 존재하지만 이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캄보디아는 앞으로 선진국들로부터 외자를 유치해 자유시장 경제체제로 진입해야 합니다. 단지 합작투자 형태뿐만 아니라,미·불·일 등지로부터 1백% 순수한 선진 외국자본을 도입해야 할 것입니다.

­혹시 이 국가들이 또다시 캄보디아를 착취하려들지 않을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국민성을 잘 알지 않습니까. 폴 포트는 우리국민의 사상과 생활방식을 개조하려 했지만 결국 허사였습니다. 변하지 않은거죠. 크메르루주 정권은 삼림개발 등으로 국토를 훼손하고 국고를 탕진했습니다.

해외기업의 캄보디아 진출을 허락하고 그들로부터 세금을 거둘 작정입니다. 외국기업들은 고용을 창출하고 기술과 장비를 전수해줄 것입니다. 수년안에 캄보디아가 제3세계와 동남아시아권에서 가장 번창하는 국가로 부상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캄보디아 재건에 있어 일본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많은 분야에서 일본은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우선 새로운 교량건설과 파손된 도로복구사업을 들수 있습니다. 투자면에서 일본기업은 현지공장과 산업시설을 건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풍부한 수자원이 있음에도 1년에 6개월 이상을 가뭄에 시달립니다. 일본기업이 이곳에 진출해 트랙터 불도저등 저수지와 운하건설에 필요한 장비를 생산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밖에 목재와 고무 등 풍부한 천연자원과 연관된 경공업 분야와 관광사업 등이 유망합니다.

­향후 캄보디아국민의 생활수준이 향상돼 크메르루주 정권에 심정적으로 동조하는 농민 등 절대빈곤계층의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까.

▲농민중 일부가 크메르루주의 정책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크메르루주 치하에서 항상 죽음과 고문의 공포를 떨치지 못하고 생활했습니다.

자유시장 경제체제하에서 국가가 창출한 부의 일부는 반드시 농민계급에 돌아가야할 것입니다. 또한 건기의 가뭄해소를 위한 치수사업에 역점을 둬 그들을 절대빈곤으로부터 해방시킬 작정입니다.

­10년내에 캄보디아가 국민소득을 두배로 증대할 수 있을까요.

▲그보다 훨씬 빠른 5년내에 가능합니다. 나는 파산상태의 캄보디아경제를 재건하는데 관심이 깊은 일본 등 선진국가들의 원조를 믿습니다.

­일본이 캄보디아내의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자위대를 파병하는 것을 찬성합니까.

▲그렇습니다. 해외파병을 금지하는 일본국내법이 개정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나는 자위대를 환영하는 바 입니다.

­군주제의 복원을 원합니까.

▲나는 근본적으로 공화주의자입니다. 나의 군주 복귀여부는 국민이 결정합니다. 국민들 사이에는 내가 왕으로 복귀해 주기를 바라는 이도 많지만 손산파 등 일부는 이에 반대합니다. 그러나 현명한 훈센 총리는 이러한 국민감정을 잘 알고 있고 군주제의 복원을 지지하는듯 합니다. 입헌군주제를 갖추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공께서 복위한다면 정치권력 행사를 삼가야 할텐데요.

▲물론이죠. 노력하겠습니다(웃음).

­크메르루주가 불법 집단화되는 것을 막기위해 정치권으로 영입할 계획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들이 민주적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아직도 그들을 불신합니까.

▲크메르루주 세력도 시대환경이 변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집권할 당시만해도 미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베트남,중국 및 소련이 이들을 지원했었습니다. 지금은 그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그 어느 누구도 크메르루주가 재집권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그들도 이제 변화하는 세계에 적응,자신의 정책을 바꿔야할 것입니다. 그들은 잔인하고 거칠지만 다행히 영리합니다.

­폴 포트를 재판에 회부할 작정입니까.

▲아무도 그를 체포할 수 없다는게 유감입니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를 비난하는 일은 쓸데없는 짓입니다.

­하지만 태국이 세계여론에 밀려 폴 포트를 포기할 수도 있을텐데요.

▲태국측은 국제여론에 별로 신경쓰지 않을듯 합니다. 그 이유는 폴 포트와 크메르루즈군이 베트남과 태국 사이에 훌륭한 완충지대 역할을 해주기 때문입니다. 태국은 베트남과 맞닥뜨리는 것을 원치않고 있습니다.

­공께서는 어쨌든 캄보디아국민을 크메르루주 정권으로부터 해방시킨 베트남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지 않습니까.

▲매우 복잡한 질문입니다. 나는 고문과 죽음에 직면한 크메르 루주의 죄수로 남아있을 때에도 조국에 대한 외국의 어떠한 침략에도 맞서 싸워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베트남은 크메르루주의 억압으로부터 구해준다는 미명하에 캄보디아를 식민지화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베트남 침략자들에 맞선 저항운동을 이끄는게 내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베트남의 개입이 없었다면 나는 죽음을 당했을 것이고 오늘밤 당신과의 인터뷰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정리=김영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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