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이후 행방 묘연 「얼굴없는 사나이」 별명/“태국 군부 비호아래 은둔생활” 추측설 유력【싱가포르=최해운특파원】 크메르 루주지도자인 키우 삼판(60)이 지난 27일 프놈펜에 귀국한지 수시간도 못돼 성난 군중에 폭행당하고 태국 방콕으로 쫓겨남으로써 크메르 루주 집권시절의 대학살에 대한 관심을 새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키우 삼판 보다는 크메르 루주의 진짜 핵심적인 지도자는 폴 포트이다.
지난 78년부터 3년반의 집권기간 동안 크메르 루주가 폴 포트정권으로 불렸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항상 그에 대한 관심은 그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고 나올 것인가라는 정치적인 문제보다는 그의 독특한 은둔생활로 묘하게도 그가 현재 어디에서 살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베일에 가린 기초적인 그의 개인생활에 대한 의문에 던져지고 있다.
폴 포트에게는 「얼굴없는 사나이」 「듣기만 하고 나타나지 않는 괴물」이란 별명이 붙여져있다. 그가 크메르 루주의 최고지도자이면서도 그의 정권이 베트남군의 캄보디아침공으로 붕괴된이후 적어도 10년동안 기자회견 한번 갖지않고 공식석방에 모습 한번 나타내지 않았다. 최근의 근황을 밝히는 사진조차 한장 없다.
그가 세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난 82년 태국캄보디아국경에서 게릴라를 지휘하는 얼굴이 유고 TV방송에 비친것이 마지막이다.
크메르 루주 간부조차도 『그는 신비스러운 야생동물』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그의 행적은 해괴하다. 캄보디아에 평화가 정착되고 있는 현재도 그가 어디에서 어떤 생활을 하고있는지 정확히 알려져 있지않다.
지난 7월 캄보디아 각 정파대표들이 협상을 가진 태국휴양지 파타야에 그가 나타나 장막뒤에서 배후조종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기자들의 끈질긴 추적에도 그의 모습은 결코 잡히지 않았다.
그가 집권시절 1백만명의 동족을 학살한 「킬링필드」의 장본인이지만 크메르 루주를 지원하는 태국군부를 죄를 묻지않고 그를 보호해주고 있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군부 최고지도자인 수친다 장군이 최근 『폴 포트도 「정당한 대우」를 받을 때가 됐다』고 언급한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폴 포트는 현재 태국남부 트라트지방의 한 저택에서 살고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의 생활은 지금까지 측근 이외에는 만난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가려있다.
그의 본명은 살로트 사르였으나 70년대초 정글게릴라 생활동안 그의 간부들과 함께 이를을 바꾸었다. 그의 일생과 철학을 살펴보면 왜 그가 그많은 동족을 학살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린다.
폴 포트는 1928년 5월 캄보디아북부 캄퐁지방의 중농집안에서 태어나 프놈펜에서 학업을 마친뒤 49년 당시 지배자였던 프랑스 정부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파리에 유학했다.
50년대 프랑스에는 좌익운동이 활발했던 때라 젊은 사르는 좌익혁명운동에 뛰어들어 맹렬히 활동하며 조국의 해방을 꿈꿨다. 그는 항상 외국식민세력과 봉건지배계층에 착취당하고 있는 농민을 어떻게 해방시킬까 골몰해왔다.
그는 전공인 라디오,전자공학공부를 게을리 해 세번이나 시험에 떨어진뒤 귀국,파리에서 교육받은 좌익인텔리를 규합,혁명조직을 구성했다.
사르는 처음 국민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농민이 착취당해 가난에 굶주리고 땅을 빼앗기는 것을 목격하면서 봉건체제를 전복시키는 계획을 추진했다. 그는 끈질긴 게릴라전끝에 미국이 지원하는 론 놀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을 쥐었다. 그의 이상실현은 「급진적 정치 사회 사상의 혁명」으로 이어져 결국 엄청난 좌익을 저지른 것이다.
그가 다시 프놈펜으로 입성하기란 삼판과 마찬가지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중국은 그에게 망명을 권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소식통에 의하면 폴 포트는 최근 캄보디아 정글에서 그의 지지자들을 상대로 정치투쟁에 다시 나서라고 역설하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진다. 아마도 삼판에 대한 테러 등 일련의 사태진전에 폴 폴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정글생활을 시작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현재로선 설득력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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