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임기 첫 해의 1월20일 정오,대통령 취임선서가 있은 연후에 시작된다. 국회의원 임기는 1월3일 정오에 시작된다. 국회는 반드시 이날 첫 집회를 열어야 한다. 미국 헌법수정 제20조는 이렇게 못박고 있다.미국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공직선거는 해마다 11월 첫 월요일 다음의 첫 화요일에 시행한다. 1792년 법률로 선거일을 그렇게 정한 이래 2백년,이 전통에 변함이 없다.
같은 대통령제이면서도,우리나라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나 선거일정에 관한 규정은 좀 느슨하다.
6공 헌법과 대통령 선거법에 의하면 대통령의 임기는 임기 첫 해의 2월25일 0시에 시작된다(헌법부칙 제2조). 따라서 이날 상오의 대통령 취임식은 대통령의 임기개시 여러 시간 뒤가 된다. 굳이 말을 하자면,대토령의 임기개시와 취임식 사이 여러 시간은 일종의 공백으로 남는다고 할수도 있다.
마찬가지로,우리나라 국회의원의 임기는 임기 첫 해의 5월30일 0시에 시작된다. 이 날짜 역시 6공 헌법 부칙에 유래한다. 그 경과 규정은 새 헌법에 따라 구성되는 국회(13대)의 첫 집회일을 국회의원 임기의 개시일로 규정했으나,4·26총선뒤의 여·야 이견으로 한달 이상 국회가 열리지 못하다가 겨우 5월30일에야 개원이 된 것이다. 따라서 다음 총선을 언제하건 13대 국회의원 임기는 5월29일까지로 된다. 만일 내년 2월쯤 조기총선을 한다면,그 때까지 3개월 이상의 국회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는 날짜가 고정되고 있으나,그 선거일정은 퍽 유동적이다. 대통령의 경우는 임기만료 70일∼40일전(헌법 제68조),국회의원은 임기만료전 1백50일∼20일전(국회의원선거법 제99조)으로만 규정한 것이다. 정부·여당은 이 범위안에서 선거일을 택일하면 된다. 흔히는 이 택일권을 정부·여당의 의당한 덤으로 인정하기도 하지만,그 선택폭이 대통령선거 30일,국회의원선거 1백20일이나 있어야하는 까닭을 알수가 없다. 정치일정에 불확실성이 너무나 큰 것이다.
이것말고도 새해 정치일정을 불확실하게 하는 요인은 더 있다.
하나는 새해 6월30일 이전에 광역과 기초 자치단체장을 선거한다는 지방자치법 부칙이다. 이것은 작년 정기국회의 여·야간 억지 타협의 산물이다. 결과적으로 1년전 여·야는,1년사이 4차례 선거를 합의해놓고,지금 와서는 4차례 선거로 나라가 결딴나리라고 야단들인 것이다. 그래서 선거연기론의 쑥덕거림마저 들린다.
다음은 여당안의 대권일정이다. 말인즉 「당헌대로」라고 하지만,그 당헌은 대통령의 임기만료 1년∼90일전에 다음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 새해 2월25일 이후의 대권논의는 당헌상 총선전·후나 정기전당대회시기(2년마다 5월)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 이후에는 대권싸움이 언제라도 폭박할 수가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여당안에 조기대폭발이 일어나는 경우,새해 정치일정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이처럼 새해 정치일정에는 변수가 많다. 세상이 온통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불안을 없애자면 적어도 미지수 넷은 없애야 한다. 헌법·국회의원선거법·지방자치법·민자당 당헌에 나타난 시계열상의 「Ⅹ」들을 한꺼번에 풀어야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 앞의 문제는 시간의 4차방정식이나 같다.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정치방정식이라도 해법은 있게 마련이고,그 수순도 뻔하다면 뻔할 것 같다.
그 첫째 수순은 모든 것을 진작부터 분명하게 하는데 있다. 총선시기와 자치단체장 선거의 향방 등 새해 정치일정에 대한 정부의 구상이 제때에 나와햐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민의를 수렴하여 정부구상을 확정할수가 있다. 그것이 바로 문제풀이의 정답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당의 대권구도란 것도,마냥 묻어두어서는 문제풀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당의 대통령후보와 그의 선출과정은 결코 당만의 것일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지금쯤 분명해야 할 모든 것이 아직도 분명치 않다는데 있다. 근래 국회모양으로 보아서는 정부·여당에 무슨 속셈이 있는 것도 같은데,더 이상 종잡을 길이 없다. 국회의 날치기 사태에 비추어,정부의 속마음은 13대 국회의 조기파장,조기개각,조기공천,조기총선에 있으며,총선을 치른 뒤 결과를 보아서 정치일정을 다시 잡자는 것인 듯도 하지만,세상이 그렇게 만만하기만 할것 같지는 않다.
아니 할말로 정치적인 셈만을 따진다고 해도,국민을 만사 불분명한 상태로 놓아둔채 치르는 조기공천에서 정부·여당은 무엇을 얻겠다는 것일까. 그래가지고는,선거결과에 따라서는 내각제개헌론이 다시 나올 것이다,자치당체장 선거는 연기할지도 모른다,여당 안에 새로운 양상의 대권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이런 의혹과 억측이 꼬리를 물 것이고,그런 분위기 속의 유권자가 몇이나 여당 표를 찍어 줄까. 그러니 정부·여당으로서 끝내 『좌할까,우할까』 하는 것은 셈이 모자란 것이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금 미국에서도 어떤 사람의 끝없는 『좌할까,우할까』가 화제로 되고 있다. 민주당이 대통령후보로 꼽고 있는 뉴욕주의 마리오 쿠오모지사가 아무리 기다려도 출마여부를 밝히지 않아 시사만화와 만평의 핀잔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모양을 NBCTV 투나잇쇼의 사회자 조니 카슨은 이렇게 비꼬고 있다.(AP)
『그는 마치 거리 한 가운데를 좌우의 깜빡이를 모두 켠채 달려오는 차와 같다』
우리 정부도 이제는 차선을 바로 잡고,깜빡이 신호를 제대로 켤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서,조니 카슨 치고는 별로 뾰족하지도 않은 조크나마 인용해 둔다.<상임고문·논설위원>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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