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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화가 돕자” 병원 전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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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포화가 돕자” 병원 전시회

입력
1991.11.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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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세브란스 주선 구준서화백 작품 10점/중국서 3월 입국… 보름째 입원/잇단사기 졸지 빈털털이/설상가상 강도피습 부상/전시 3시간만에 매진… “고국사랑 꼭 기억”모국을 찾았다가 횡액을 당한 중국동포화가를 돕기 위해 병원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6일 상오11시 연세대 의대건물 1층 로비에는 10호짜리 소품에서부터 1백50호짜리까지 다양한 크기의 유화 10점이 내걸렸다. 천지와 호랑이,폭포 등 주로 백두산의 풍경을 소재로 한 이 그림들은 웅혼한 필치와 장쾌한 분위기로 눈길을 끌었다.

이 그림의 작가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506호에 보름째 입원중인 구준서화백(46·중국 길림성 연길시 거주).

지난 3월1일 필생의 역작 25점을 갖고 입국할때만 해도 구 화백은 모국에서 개인전을 갖는 첫 중국교포화가라는 이유만으로도 국내 미술계와 매스컴의 각광을 받았다.

지난 6,7월 두차례 서울 종로와 강남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때까지 구 화백은 서울역부근 값싼 여인숙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워가면서도 작품이 정당한 평가를 받으면 고향에서 번듯한 화실을 차릴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인 전시회에서는 누드작품 6점만 팔렸고 국내전을 주선한 스폰서는 그나마 판매대금 5백만원을 비용으로 계산,한푼도 돌려주지 않았다.

밀린 숙박비에다 작품보관 장소조차없어 난감해하던 차에 또다른 브로커가 접근,8백만원이라는 헐값을 제시했고 당장 여비도 없는 구 화백은 눈물을 머금고 남은 19점 모두를 넘겼다.

그러나 약속한 8백만원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9일 여인숙에 20대 강도가 침입,방안을 뒤지다 털어갈 금품이 없자 구 화백에게 칼을 휘둘렀다.

양쪽가슴을 찔려 폐까지 상한채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실려온 구 화백은 아무 연락처가 없어 당연히 행려환자로 처리됐다. 구 화백이 고향에 두고온 부인과 두딸에게 부끄럽고 걱정이 될까봐 한사코 연고지를 밝히지 않은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를 통해 구 화백의 신분과 기막힌 사연을 알게된 병원측은 모국 사람들이 입힌 몸과 마음의 상처를 다같이 치료해주기로 했다.

우선 치료비 입원비를 전액 무료로 해주기로 하고 그림회수에 나섰다. 병원사회사업과 직원들은 지난주 브로커를 찾아내 그림을 산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돌려줄 것을 간청했다.

천신만고끝에 아직 대금이 치러지지않은 10점을 회수하는데 성공한 병원측은 여러 화랑을 통해 그림가치를 물어본 결과 국내 유수화가의 작품에 비해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얻어냈다.

그러나 일반화랑 전시는 비용이 너무커 고민끝에 병원에서 직접 전시회를 열어주기로 했다.

비록 조명시설도 제대로 안된 엉성한 전시장이었지만 이 소식이 알려지자 교수 의사 환자가족들이 몰려들어 3시간만에 모두 팔리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어느 환자의 보호자는 30만원 가격표가 붙은 그림을 1백만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구 화백은 『꿈에도 그리던 모국에와 물정어두운 탓에 험한 일을 당했지만 고향에 가면 동포들의 따뜻한 마음을 잊지않고 열심히 좋은 그림을 그리겠습니다』라며 목이 메었다.

구 화백은 66년 길림성 예술학원을 졸업,작품활동을 시작했으나 문화혁명 당시 그림에 정치색이 없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다 79년부터서야 본격적인 창작활동을 시작,중국동포사회에서는 가장 알려진 화가다.<원일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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