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한 토론회 참가를 위해 북한여성대표로서 서울에 온 여연구 북한최고인민회의 부의장의 「45년만의 성묘」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지난 46년 19세 처녀의 나이로 월북했던 여씨가 45년만에 64세의 노인으로 서울에 돌아와 부친 몽양 여윤형선생 묘소에 엎드려 흐느끼고 있는 모습은 많은 이의 마음을 착잡하게 한다.
여씨 개인으로서 45년 만에 자식의 도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을 뿐 아니라 서울의 사촌동생도 만나고 이화여전 시절의 많은 동창생도 볼 수 있게 됐으니 더할 수 없이 감회어린 서울행일 것이다.
하지만 인지상정일수 있는 흐뭇함에 앞서 착잡함이 번져나오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 일까.
그것은 바로 1천만 이산가족의 눈과 바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도 모두 북녘의 아버지 묘소를 부둥켜 안고 통곡할 권리를 갖고 있고 또 그래야 할 도리를 느끼고 있지만 현실의 벽이 이를 허용치 않고 있다.
사실 이번 북한대표들의 남행이 우여곡절끝에 성사된데에도 여씨의 「수구초심」도 일조를 했다는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생을 다하기전에 고향인 서울땅을 한번 밟아보고 싶은」 「여 노인의 향수가 모두가 불가능하리라고 예상했던 북녀들의 서울행을 가능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는 얘기이다.
만약 그렇다면 수많은 이산가족들의 수구초심도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
그동안의 남북관계에서 「선택받은 사람들의 소원성취」는 간혹 이뤄졌다.
이들은 대부분 정부의 고관 또는 유명인 등의 일정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 여씨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몽양 선생의 딸,최고인민회의 부의장(국회부의장)이라는 높은 관직,김일성 주석의 각별한 정을 받고 있다는 점 등이 그에게 선택받는 기회를 제공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남북관계가 새장을 맞고 있는 이제 이런 선택의 벽은 하루빨리 무너져야 한다.
이를위해 6년동안 열리지 못하고 있는 적십자 회담 등 인도적 교류를 위한 남북접촉이 하루빨리 재개되어야 할 것이다. 여씨의 성묘가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말고 1천만 이산가족의 한을 풀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서울행을 보는 눈이 예사로 올 수 없는 것이다.
선택된 남북상봉이 이제는 모든 이산가족 결합으로 변할때도 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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