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측 「김일성」이름의 화환까지 사전준비/「우리의 소원」 합창… 참가자들 눈물 “글썽”【판문점=공동취재단】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서울세미나에 참석하는 북측대표단 15명은 25일 상오11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를 통해 남녘땅에 첫발.
모두 꽃무늬 한복차림인 여연구 북한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등 북측대표 5명은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을 넘어서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이효재씨(한국여성단체연합회 회장) 등 우리측 영접위원 5명으로부터 각각 꽃다발을 전달받은후 서로 가볍게 포옹.
특히 46년 이화여전 재학중 월북,45년만에 남녘땅을 밟은 여 부의장은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도 만감이 교차되는듯 감격어린 표정. 북측대표단은 도착성명이나 남북 대표단과의 환담절차 없이 서울로 떠났는데 여 부의장은 승용차,나머지 대표들은 버스를 이용.
○…판문점을 출발한 북측 대표들은 경찰선도차의 안내로 50여분만에 숙소인 서울 종로구 평찰동 라마다 올림피아 호텔로 직행.
이들은 현관입구에 마중나온 이태영 한국가정법률상담소장 등 우리측 영접위원 6명과 가볍게 포옹하거나 악수를 교환한뒤 사진기자들의 요구로 우리측 영접위원들과 읏으며 포즈. 이어 엘리베이터 2대로 나뉘어 8층 숙소로 올라가 여장을 푼뒤 하오1시부터 점심식사.
○…여 대표는 짙은 감색 바탕에 화려한 꽃무늬가 대담하게 수놓아진 차림으로 의상에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는데 호텔정문에서 이 소장이 『동생 연구야,네가 마치 하늘로부터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갖고오는 천사와 같구나』라고 말하자 『그래요 반갑습니다』러고 인사. 이 소장은 몽양 여운형선생이 35년 당시 사장이던 조전중앙일보 주최 전 조선여자전문학교 웅변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은것이 인연이돼 몽양의 수양딸이 됐던 것.
○…하오2시50분께 이효재 남측대표와 동승,승용차편으로 서울 도봉구 우이동 묘역에 도착한 여 대표는 흰색수실로 짠 스카프를 머리에 두른채 오열하며 하차한뒤 묘역에 도달할 때까지 내내 울먹이는 모습.
여 대표는 묘역앞까지 마중나온 남한의 유일한 생존혈육인 사촌동생 여명구씨(65·의학박사)를 부둥켜 안고 한동안 울먹이다 여 박사의 부축을 받으며 언덕을 20여m 가량 오르면서도 연신 눈물.
○…묘소참배에는 당초 여 대표만 참석키로 돼있었으나 북측 대표들은 물론 수행기자들까지 대거 따라 나섰고 참배에 쓸 제수와 영전에 바칠 김일성화 김정일화까지 모두 대형상자에 포장해 운반.
특히 여 대표는 오찬을 끝낸뒤 혈압이 1백70까지 올라가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않아 주최측이 묘지 참배 보류 또는 연기를 권했는데도 참배를 강행.
○…북측 수행원들이 화환을 진설한뒤 「몽양 려운형선생을 추모하여 김일성」이라고 쓰인 붉은색천을 화환위에 걸자 몽양 추모사업회측이 철거를 요구하고 나서 한때 실랑이.
북측 기자들은 추모사업회 사무총장 여부영까지가 『순수한 추모행사를 정치적 행동으로 오염시키지 말라』며 붉은색 리본의 철거를 요구하자 여씨의 팔을 잡고 『점잖지 못하게 왜 이래요』라며 실랑이.
북측기자들은 화환이 세워지자 기다렸다는듯이 촬영하기 시작했고 우리측과 북측과의 실랑이 모습도 취재.
○…여연구대표의 모교인 이화여대는 27일 하오2시로 예정된 북한대표단의 방문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
윤후정 총장과 교수들,북히 여 부의장과 46년 이화여전 동기동창들과의 만남이 계획돼 있는데 총학생회는 재학생 1만여명이 참가하는 「통일환영판」을 열 계획.
○…환영의 밤 행사는 여성학자 오낙숙씨의 사회로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
참석자들은 감정이 고조되는지 때때로 눈물을 훔치기도.
참석자들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다함께 일어서서 부르는 것으로 자리를 마무리.
○…저녁만찬에 이은 환영의 밤 행사에서 북측답사를 한 여연구대표는 건강이 나빠 몹시 힘든 표정.
그는 간간이 말을 쉬어가며 답사를 하면서도 몹시 상기된 표정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와 여성의 역할을 강조.
그는 『다음에 다시 만날때는 주막이 아니라 서로의 집에서 묵기위해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만난다고 생각한다』며 『여성들도 가정이나 생업에만 묻히지 말고 남성보다 앞서 통일에 기여하자』고 호소.
◎몽양 여운형의 둘째딸/북한 정치계 “여성 간판”/여연구는 누구인가.
25일 개막된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의 북측대표 5명중 단장격인 여연구씨(66)는 북한의 대표적인 여성정치인 가운데 한사람이다.
광복직후 월북한 이래 45년만에 서울 땅을 밟은 여씨는 광복정국에서 중도좌파 정치인으로 활동하다 암살된 몽양 여운형의 차녀로 더 유명하다.
84년 그가 제네바 IPU총회와 85년 나이로비 셰계여성대회에 북한대표로 얼굴을 내보이면서 한국에 간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현재 그는 최고인민대회의 상설회의 부의장,조국통일 민주주의전선 중앙위 의장,조선여성동맹중앙위 상무위원,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등의 직함을 갖고있을 뿐아니라 임수경석방 투쟁 조선위원회 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에서 태어난 여씨는 재동국민학교와 배화여고를 거쳐 45년 이화여전 문과를 다니다 47년초 원구 등 동생 둘을 데리고 월북했다. 친공인사로 찍힌 몽양이 46년 방북,김일성과 만난 자리에서 자녀문제를 협의한것이 월북계기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가족관계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80년대초반까지 미혼으로 있었다는 얘기도 있고 결혼을 해 무역회사 지도원으로 일하는 딸과 사위,손자 셋이 있다는 얘기도 있다.
서울에 사촌인 여명구씨(의사) 등 친척이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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