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세 이미지 오히려 “희석”/경영손실도 「우려」에 그쳐/정부에도 상처… 정경유착 폐해 치유계기로현대그룹 정주영회장의 세금납부 거부소동이 남긴 「손익계산서」는 어떤 모습을 띨것인가.
겉보기상 이번 사태는 현대측의 일방적 굴복으로 끝났지만 속내용을 잘 음미해보면 적어도 현대와 정 회장의 「판정승」쪽으로 봐야한다는 지적이 제기돼 눈길을 끌고 있다.
이같은 시각에 따르면 현대측은 일련의 사태진행을 통해 변칙적 증여상속을 기도한 탈세기업이라는 이미지가운데 상당부분을 희석시켜 엉뚱하게 6공정부로부터 탄압받은 그룹의 하나로 여겨지게끔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현대그룹이 당초 서슬퍼렇게 『돈이 없어 세금 못내겠다』고 주장하던 태도를 사흘만에 바꾸게된 배경을 쭉 거슬러보면 이같은 분석에도 상당한 근거가 있음을 알수있다. 현대측의 돌연한 저자세로의 전환은 무엇보다 『국내 최대재벌이 돈없어 세금 못낸다는 엄살이 웬말이냐』는 대다수 국민들의 비난이 예상보다 현저하게 컸기 때문임을 지적해야한다. 사건 발생직후 언론사에 쇄도한 독자전화중 상당수가 『정 회장이 돈없어 못내면 나같은 서민은 앞으로 세무서에 갈 이유가 없다』고 힐난하는 내용이었다.
현대그룹 사정을 잘아는 관계자들도 『정 회장 발언이 많은 국민들에게 엄청난 위화감과 좌절감을 안겨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것 같다』고 실토할 정도였다.
또 정부당국은 이같은 여론을 업고 현대측 행위를 국가 고유권한인 조세권에 대한 전면적 선전포고로 규정,재산압류를 포함한 세정차원 대응뿐아니라 유형 무형의 압력으로 시시각각 조여갔다.
이렇게되자 현대측은 자칫 「제2의 국제사태」처럼 몰리지 않을까하는 그룹 존립차원의 위기의식을 느끼게된 것으로 여겨진다.
현대관계자들은 『설마 당국이 국내 정상급 그룹이자 세계적으로 이름높은 한국의 간판기업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는 생각이었겠지만 정통성을 가진 민선정부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대 현대 비난여론을 업고 비상한 결단을 내리는 사태도 고려에 넣지않을 수 없게 된것같다.
게다가 현대측은 세금납부 시한을 넘겨 탈세기업으로 낙인찍힐 경우 현행 제도상 자동적으로 생기는 경제적 불이익도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고 봐야할것이다.
먼저 현대건설이 진행중인 지하철공사 등 40여건 1조2천억원 규모의 관급공사 잔금중 상당부분을 제때에 받기 어렵게 된다.
또 각종 정부입찰자격이 제한되면 경부고속전철 지하철전동차 LNG(액화천연가스)선 등 수조원 규모의 공사를 힘한번 못써보고 넘겨줘야 한다.
각 계열사별로 매출액중 무시못할 비중에 달하는 각종 관납·군납거래도 장래가 불확실해지는 한편 해외기술 도입·합작투자 등 계류중인 인허가현안에까지 악영향이 예상됐다.
결국 사태발생후 증시에 나돈 『계열사 몇개의 문을 닫는 각오로 이번일을 저질렀다』는 등의 소문만큼 기세등등했던 현대그룹은 조기수습쪽으로 슬그머니 발을 빼는 방안을 택하게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발전사상 초유인 이번 사태로 인해 직접당사자인 정부와 현대그룹은 각각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먼저 정부 당국 입장에선 위엄손상과 함께 민간기업이 정권에 맞서는 수모외에 얻은것은 없다고 많은 국민들은 느끼고 있다.
반면 현대측 대차대조표상의 손실부분은 거의 대부분 피해·불이익을 입을 「가능성」이나 「우려」에 그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익부분은 두말할 것도 없이 6공 정부에 탄압받는 국내 최대그룹답게 따질것은 따졌다는 평가도 얻고 추징세금도 떳떳이 분납 혹은 유예신청하면서 법정투쟁으로 밀고가게 된것이다.
아울러 정 회장은 재계원로로서의 위엄을 과시하며 정부,나아가 대통령과 어깨를 겨룬 사람으로까지 정치적 입지를 높인 결과를 빚었다는 분석이다.
이제 일단 현대그룹의 세금납부 거부소동은 외견상 수습됐다. 그렇지만 이번 사건은 그동안 국가경제의 빠른 성장을 위해 정부가 온갖 특혜를 줘 키워준 재벌이 조세권 부인 형식으로 정부에 도전한 것이라는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일치된 평가다.
휴전상태로 들어간 재벌과 정부의 대립은 마치 「꺼지지 않은 화산」과 같으며 이런 상태의 획기적인 교정없이 또다시 「정경유착」의 관행을 되풀이 한다면 남을것은 치유할 길없는 「금권정치」의 폐해 뿐이라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유석기기자>유석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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