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민간보상」 유연성/핵등 현안엔 “시간끌기”/일본인처 명단전달 성의… “타결 서둘러”【동경=문창재특파원】 북한과 일본간의 제5차 수교회담에서 보상문제 등 일부의제에서 북한의 조심스런 태도변화가 엿보였다.
북한의 변화는 이른바 「전쟁배상」 요구를 재론하지 않은 것과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자제에서 발견됐다.
언제나 그랬듯이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도 보상문제를 먼저 꺼냈고 일본은 북한의 핵사찰 문제에 중점을 두었다. 보상문제에서 북한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일본언론들이 주목하는 부분은 이른바 교전관계를 내세운 「전쟁배상」 요구와 전후 45년간의 적대행위에 대한 보상요구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식민지시대 김일성의 항일 빨치산 활동이 일본과 교전상태였다고 주장,배상을 요구해왔다. 또 전후 45년간 일본이 세계 모든 나라와 외교관계를 맺으면서도 북한에 대해서만은 여권에 여행금지국으로 명기하는 등 적대행위를 해왔으므로 이에 대한 보상을 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북한대표인 전인철 외교부 부부장은 『다케시타(죽하등) 전 총리가 89년 3월 의회에서 식민지시대 조선인민에게 가한 고통과 손실에 대해 사과한 이상 그에 상응하는 물질적 보상이 있어야 마땅하다』는 「보상」 요구를 제기했다. 또 옛 서독이 유태인들에게 나치의 범죄행위에 대해 보상한 사실과 미국 캐나다가 태평양전쟁중 일본계 주민을 강제수용한 것을 보상해준 사실을 들어 「국제관행상」 「도덕·윤리상」 식민지시대의 수탈과 인적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는 상식론을 제기했다.
그는 18일 회담 개막때의 인사말에서 『일본의 과거행위를 일일이 들추어 일본측을 자극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고 말했다. 전의 이같은 발언들은 더이상 논리싸움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는 절박한 속사정 때문인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당면 최대목표는 내년 4월까지는 수교회담을 마무리,보상을 받아내는 일이다. 외화와 식량 및 생필품 부족은 더이상 버텨내기 힘들 만큼 급박하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도 성과없이 끝나면 6차 회담은 내년으로 넘어가고,4월까지 또한번 기회가 있을지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먹혀들지 않는 교전관계론에 집착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첫날 회담에서 북한이 「조·일 선린우호조약」을 체결하자고 제안한 것도 이같은 속사정 때문이라고 일본측은 분석하고 있다.
핵사찰 문제에서는 예상대로 남북한 동시사찰을 요구하고 나서 큰 태도변화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일본신문에 보도된 전의 발언을 유의해보면 다소 유연한 자세를 읽을수 있다. 18일의 모두 발언에서 전은 처음으로 「국제정세의 변화」를 언급했다. 부시 미국대통령의 핵무기 감축제안과 노태우대통령의 한반도 비핵화선언 등 한반도 정세변화를 두고 한 말이다. 구체적으로 부시 제안에 대해서는 『환영』이란 말을 써가며 호의를 보였다.
또 한국에 대한 「미국 핵우산」 문제를 꺼내지 않은 것도 같은 배려로 인식할 수 있다. 물론 이같은 「호의」는 미국과의 직접 대좌를 노린 핵카드,또는 시간벌기작전으로도 해석되지만 지금까지의 수교교섭에서 그들이 견지했던 자세와는 달라진 것이다.
마지막날인 20일 회의에서 북한측이 「일본인 처」 명단을 일본측에 건네준 것도 회담추진에 대한 성의표시로 보인다. 일본은 지난 3월 2차 회담때 재일동포와 결혼해 북송된 6천7백여명의 일본여성중 안부가 확인되지 않는 12명의 안부확인 조사를 의뢰했었다. 북한측은 이중 5명이 사망한 사실을 포함해 그들의 주소와 생사여부를 밝힌 명단을 전달했으며,일본측이 새로 의뢰한 20명에 대해서도 안부확인을 약속했다. 또 일본인 처의 고향방문 요청에 관해서도 『교섭이 진전되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실현시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회담에 역사와 경제전문가 2명을 새로 대표단에 참가시킨 사실도 타결을 서두르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19일 회담이 끝난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인철 북한대표는 『상호 견해차이를 인정하면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일치점과 유사점을 찾을 수 있었다』면서 『회담은 진전됐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진전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시한에 쫓긴 북한측이 명분론에서 한걸음 물러서 실리를 추구하기 시작한 것만은 분명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