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인권 상징적 성과 그쳐/관계 정상화에 일단 “의미”【홍콩=유주석특파원】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이 사흘간의 힘겨운 북경방문을 끝내고 17일 저녁 귀국길에 올랐다. 그의 방중은 89년 6·4 천안문 사건이후 최고위급 지도자들간의 첫 공식회담이란 점에서 양국관계가 2년반만에 사실상 정상화단계로 들어섰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관심을 모아왔다. 그러나 막상 회담의 성과를 두고는 극히 엇갈린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언론은 이번 회담이 아무런 실질소득이 없는 실패작이었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반면 중국측은 주요현안들에 상호이해가 증진되고 몇가지 항목에 중요진전을 이룬 성공적 회담이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이런 기본적인 시각의 차이에도 이번 회담이 양국관계 개선에 큰 진전을 가져다 주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다. 물론 미국측이 집요하게 요구해온 정치범석방 등 중국내 인권상황의 개선은 근본적인 해결의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끝났다. 그러나 이점은 이미 충분히 예상됐던 결과였다.
중국은 베이커의 방중직전 인권백서를 통해 체제와 이념·가치관·제도의 차이를 내세워 인권문제에 강경입장을 분명히 했고 베이커 자신도 회담을 시작하며 이 문제에 관한 양국간 견해차가 너무커 단한번의 방문·회담으로 모든 것의 해결을 바라기 어렵다고 했었다.
베이커의 17일,마지막날 동정은 그가 회담의 막바지 순간까지도 인권문제에 대해 중국측의 아무런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음을 시사해주고 있다. 당초 이날 하오1시15분으로 예정했던 출국전용기를 비행장에 대기시킨 상태에서 전기침 외교부장과 정오부터 장장 다섯시간의 최후담판을 벌여야 했다. 미의회와 여론이 요구하는 최대난제인 인권문제를 두고 빈손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베이커에게 중국은 체면살려주기 양보를 했다. 지난 5월 미국이 비공개로 중국측에 전달했던 8백명의 정치범석방 요구자 명단을 놓고 한사람씩 개별적으로 그 처리과정과 근황을 묻고 공식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인권문제에 빈손귀국은 면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알맹이 없는 「창백한 성과」이다. 하오5시10분께 최후담판을 끝내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베이커는 『모두 18시간의 회담을 통해 미국은 인권·무역·무기통제의 3개 주요 현안에서 다같이 의미있는 진전을 얻어냈다』고 애써 성과를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질문이 빗발친 인권문제에 관해 그는 이번 회담이 양국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인권문제에 관한 미국의 유보와 불만의 태도를 밝혔다. 미국 국내여론을 의식한 발언이다. 베이커는 15일 도착당일 자신의 방중이 6·4후 미정부가 취했던 중국과의 고위관리 접촉금지령 해제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최혜국대우 박탈말고 뾰족한 대중국 제재나 압력수단이 달리없고 보면 양국관계는 이로써 「완전한 정상화」와 사실상 큰 차이가 있을 것이없다. 이번 회담결과에 대한 미국 언론의 비판에 비례해 중국은 상대적으로 많은 것을 얻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번 회담에서 양국이 이견을 보였던 문제들은 중국측이 「양보」의 용의를 이미 밝히고 사전준비를 해왔던 것들이다. 한편 지적소유권 보호문제에 있어 중국은 이미 국무위원겸 과학기술위 주임 송건을 주임으로 전담소조를 구성해 관련법규 제정작업에 들어가 있다. 핵무기확산금지조약 서명도 중국은 이미 전인대의 형식적 비준절차만을 남겨둔 상태로 내년 3월말 이전 비준즉시 조인약속은 생색에 불과하다. 수형자제조상품의 대미수출 금지약속이 유일한 완전양보로 꼽히고 있으나 이 문제도 노동개조 수용소 등의 시설을 합법적인 국영공장으로 인정하는 등 미측이 보기에 제도의 차이를 위장하는 경우 실질의미가 없어질 소지를 그대로 남겨놓고 있다. 미사일판매와 핵기술이전 문제도 중국은 해당조약(NPT 및 MTCR)과 관련규정의 준수를 약속했으나 핵기술의 경우 「평화적 목적」,미사일의 경우 사정거리 3백㎞ 이하의 「규정외」 품목 등 맹점을 이용하려 들 경우 실효가 의문시되고 있다. 인권문제만해도 중국이 비형사범의 출국허용을 「양보」하고 정치범처리 및 근황을 알리는 성의를 보였으나 주요 투옥인사의 석방은 물론 근본적인 인권상황 개선요구는 완전히 외면되고 말았다. 실속없는 양보에 비해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적지않다. 관세무역 일반협정 가입문제에서 북경은 「중앙정부」로서 지역정부(관세구) 대북에 선행가입·대만가입에 발언권을 얻는데 미측 도움을 얻게 됐다. 연간 1백억달러를 넘어선 대미무역 흑자개선을 위한 어떤 구체적 조치도 약속하지 않고 반면 미측의 301조 적용조사 착수방침의 철회를 얻어냈다. 또 첨단과학기술 이전억제 조치의 철회도 약속받았다. 이같은 결과만을 두고볼때 이번 베이커 방중의 양국간 외교는 중국쪽의 승리였다는 평가를 받을만하다. 그러나 관계정상화는 양국이 다같이 필요로 하는 당면 외교과제라는 점에서 당장의 성과를 놓고 승리,또는 패배라는 도식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중국관찰자들은 북경지도자들이 금년중 또는 내년초 주요 정치범의 석방 등 대미정상화의 제스처를 통해 중국식 명분외교를 마무리지으려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무엇보다 중미관계의 개선과 진전은 중국내 온건개혁파의 입지를 강화,중국내부의 변화를 유도해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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