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3점세트」 공개 공방/미야자와 총리 연일 곤욕/정치윤리·책임문제등 파문 커질듯【동경=문창재특파원】 리크루트사건에 관련됐던 묵은 상처가 덧나 미야자와(궁택희일) 일본총리가 연일 곤욕을 치르고 있다.
일본국회에서 그가 제78대 총리로 지명된 다음날(11월6일) 다나베(전변성) 사회당 위원장 등 일부 야당총수들이 대표질의에서 의혹 해명을 요구한 것을 신호탄으로 야당의원들이 집중공격을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야자와 총리는 번번이 『깊이 반성하고 있다」며 고개 숙이고 있지만 야당의원들은 이른바 「3점세트」라는 관련자료의 공개를 요구,국회운영에 차질이 생기는 사태로 발전했다. 3점세트란 미야자와 총리가 리크루트 코스모스사의 미공개주식 1만주를 특혜배정 받았을때의 ▲주식 매매계약서 ▲주식값 불입증명서 ▲매각 차익금 증명서 등 세가지 서류를 말한다.
14일 예산위원회에서 사회당 서기장 야마하나(산화정부) 의원은 『리쿠루트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계 최대의 현안문제가 된 정치개혁 의지가 어디로 갔느냐』고 총리를 비판한뒤 세가지 서류의 공개를 요구했다. 입술을 깨물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던 미야자와 총리는 답변대에 나가 『예산위원회의 공식결정에 의한 요구라면 제출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 답변이 있은뒤 야당측은 『오늘중에 제출하지 않으면 대정부 질의를 거부하겠다』면서 즉시 제출을 요구했고,자민당측은 『12월 예산심의때 제출하겠다』고 맞서 한때 의사진행이 중단되기도 했다.
미야자와 총리가 이 서류들을 제출한다면 그가 권력자로서 특혜 배정받은 주식을 되팔아 막대한 전매이익을 본 사실이 공식 확인되는 셈이어서 또 한번 책임문제와 정치윤리 문제가 재연될 것이 틀림없다. 야당측은 주식 특혜배정건 말고도 그가 리크루트사로부터 5천만엔의 정치헌금,5천만엔 어치의 정치자금 모금 파티헌금을 받은 사실까지도 다시 문제로 삼고 있다. 그뿐 아니라 와타나베(도변미지웅) 부총리겸 외무장관,가토(가등굉일) 관방장관,와타나베(도변수앙) 우정장관 등 나머지 3명의 리쿠루트 관련 각료들에게도 해명을 요구하고 나서 리크루트사건 제2라운드는 일본 정국에 또 한번 파동을 일으켰다.
야당 의원들이 이토록 집요하게 미야자와 총리의 리크루트 관련사실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사건당시 본인의 국회답변이 매일 달랐던데다 세가지 서류제출을 끝까지 거부한채 부총리겸 대장장관직을 사임해 진상규명의 기회가 없었던 때문이다.
미야자와 총리는 대장장관으로 재직중이던 86년 9월 리크루트 코스모스사의 미공개주식 1만주를 사들여 이 주식이 공개된 뒤 되팔았다. 전매차익은 2천2백만엔 정도. 88년 이 사실이 밝혀져 국회에서 문제가 되자 그는 핫토리(복부항웅)란 비서의 친구가 한 일이라고 거짓답변했다. 매매계약이 본인의 이름으로 돼있음이 밝혀지자 그는 『비서가 했다』고 답변을 수정,끝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고 잡아뗐다.
야당 의원들의 관련서류 공개요구를 거부하고,기자들의 질문공세에 「노코멘트」만 되풀이한 끝에 부총리겸 대장장관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와타나베 부총리도 같은 시기에 비서였던 장남의 이름으로 5천주를 배정받아 1천만엔을 벌었었다. 그는 자신의 책임으로 한 일임은 깨끗이 인정했지만 『단순한 상거래 행위인데 무엇이 나쁘냐』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었다.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그는 전매차익을 헌혈사업단에 기부하고 말았다.
가토 관방장관도 5천주를 배정받아 1천만엔의 전매차익을 얻었으며,와타나베 우정장관은 1만주를 전매해 2천만엔을 벌었었다. 이들도 『정치자금으로 받은 것』이라느니 『단순한 경제행위』라느니 하는 말로 일관했다.
취직정보지 「리크루트」 발행을 시작으로 신흥재벌이 됐던 리크루트사 에조에(강부정호) 회장이 정계·관계·언론계 등의 실력자들에게 자기회사의 미공개 주식을 액면가 대로 수천수만주씩 특혜양도해준 것은 분명한 거액뇌물이었다. 그런데도 본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뇌물성을 부인하고 있다.
그후에 있었던 총선거(90년 2월)에서 「리크루트 의원」들은 거의 재당선됐다. 선거구민들이 다시 국회의원으로 뽑아준 것은 용서를 받은 것이라는 이른바 「선거면책론」이 그들의 한결같은 주장이다.
때묻은 정치인들이 총리 부총리 장관자리를 차지하고 집권당의 최고고문과 핵심당직에 복귀한 것은 처음부터 말썽의 소지를 안고 있었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일을 모를리 없는 자민당 핵심부가 여론을 무시하고 그들을 재등용한 것은 일본정치의 난해상을 말해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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