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6백37년(인조 15년) 정월 30일.임금은 삭풍 몰아치는 잠실벌에 꿇어 앉아 세번 절하고 아홉번 머리 조아려 청태종에 사죄했다』
역사는 「삼전도 굴욕」의 그날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너무나 아팠던,그래서 결코 잊을수 없는 그날을 새삼 떠올리는 까닭은 병자호란때 조정공론을 양분한 척화·주화의 대립 양상이 흡사 오늘날 UR농산물협상 타결을 맞아 쌀시장 개방을 둘러싸고 벌이는 각계의 의견반목과 비슷한 생각 때문이다.
정부는 지금껏 『쌀만은 열수 없다』는 입장만 고수하고 있고 정치권도 여러차례 「개방불가」 결의를 되풀이했다. 적어도 쌀에 관한 공론은 명백히 「척화」한 목소리뿐인 셈이다.
쌀은 우리나라 농업소득의 절반을 점하는 중요 작목으로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개방파고에 그냥 방치할 수 없다는 명분을 거스를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국내농업은 세계에서 가장 쌀값이 비쌀만큼 허약해진 상태고 우리 경제전체는 총생산(GNP)의 25%를 수출에 의존,대외고립이 불가능한 체질이다. 현재의 UR동향은 극단적으로 우리에게 쌀시장을 개방하든지 아니면 협상참여를 포기하든지 택일토록 강요하는 상황도 전혀 배제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호란당시 오랑캐 우두머리에 신하의 굴욕을 감수토록 임금께 주청한 주화파를 누가 불충으로 매도할 수 있을 것인가.
쌀시장 개방이 갖는 국민 정서적 충격과 정치사회적 파급영향을 외면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 협상 마지막 순간까지 쌀만은 지켜보려는 충정을 무시할 수 없음도 엄연한 사실이다.
그러나 「척화」 이외 어떤 논의도 용납못하는 국내분위기가 국제사회에서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태가 올 경우엔 어떻게 되나.
16일 농산물을 포함한 UR협상의 마무리 절충을 위해 정부 실무대표단이 현지로 떠났다. 만약 연내 UR타결 방침이 굳어진다면 쌀시장을 지키기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은 이번 절충이 마지막 시도가 될지 모른다.
잠을 못이룬듯 얼굴이 푸석해진 대표단 일행을 배웅한 한 관계자는 『자칫 역사의 죄인지 될지 모른다는 비장한 결의를 안고 그들은 떠났다』고 말꼬리를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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