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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님의 명함/김창열칼럼(토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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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관님의 명함/김창열칼럼(토요세평)

입력
1991.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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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흔한 것이 명함 같지만,장관의 명함은 그렇지도 않다. 명함철을 꺼내 봐도 장관 명함은 눈에 띄지 않는다. 워낙 지명도가 높은 분들이라,새삼 명함을 뿌릴 까닭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환경처의 권이혁장관이다. 그는 지난달부터 명함을 새로 박아 쓰고 있다. 나도 그 명함 한장을 받았다.

그 명함은 앞면만 흰색이고 뒷면은 회색이다. 그 앞면 왼쪽 아래 귀퉁이에,「재생지 사용」이란 작은 글씨가 보인다. 100% 재생종이(한면만 코팅한 마닐라 백판지) 명함이란 표시다. 환경처의 모든 간부들도 지금 장관것과 같은 재생지 명함을 지니고 다닌다.

계산에 의하면,아트지로 만든 명함 1백장 한갑 값은 6천원,이중 종이값이 1백46원이다. 재생종이로 하면,인쇄·재판 비용은 같으나,종이값은 1백11원으로 35원이 싸다. 그러나 재생종이 명함의 뜻은,돈 몇 10원을 아낀다는 것보다,이 명함이 바로 재생종이가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는 한 예증이라는 것,폐기물 재활용시책의 다짐이라는데 있다 할 것이다.

그래서 장관의 재생종이 명함을 대견하게 받아 보았지만,두어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하나는 아예 코팅을 하지 않은 종이를 썼더라면 하는 것.

다음은 「재생지 사용」이란 글씨 대신,잘 도안된 재활용 마크를 제정해서 썼더라면 하는 것이었다. 그랬더라면,재활용 마크를,KS마크나 Q마크처럼,재생타이어,재생종이 공책 등 재생 상품에 표시토록하여,소비자의 선택과 판단을 돕고 계몽도 하는,새로운 표시제도 마련의 계기가 생기지 않았을까 싶은 것이다.

그런 재활용 마크중의 한가지가 그림 동화작가 강우현씨(38·아시아 문화교류연구소장)가 도안한 「재돌이 마크」다. 그 마크는 지구를 본뜬 동그란 어린이 얼굴과,그 양옆 두 손에,한쪽은 두루마리 종이,한쪽은 나무의 새싹을 든 모양을 도안 한 것이다. 재생종이를 써서 나무를 아끼고 지구환경을 지킨다는 뜻이다.

강씨는 지난 10월초 서울도서전에 「세계 어린이 공책 전시회」를 곁들여,우리나라 공책이 가장 사치스러움을 일깨운 장본인이다. 그는 이 전시회를 계기로 재생종이 공책 보급운동도 펴고 있다. 누구든 한 구좌 1만5천원을 보내오면 공책 1백50권을 지정한 국민학교로 보내준다. 시중 백상지 공책의 반값꼴이지만,질은 손색이 없다. 그보다 재활용의 뜻을 어린이들에게 알리는 효과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 재생종이 운동에는 큰 장애가 하나 있다. 공업표준화법에 근거한 한국공업 규격이 공책은 백상지만 쓰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재생종이 공책은 위법이 된다. 우리나라 공책이 가장 사치스런 까닭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업 규격이란 본디 제품의 품질 보장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고급 원자재를 쓰도록 요구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공업규격이 재생제품 규격을 온통 빠뜨리고 있는 것은 오늘의 추세와 동떨어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 때문에 제조업자는 재생원자재를 쓰고 싶어도 못쓴다. 종이의 경우는 폐지를 몇% 섞으면 재생종이로 칠지의 기준조차 없다. 자원재활용의 기틀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꼴이다. 이른바 리사이틀 시대를 열자면 먼저 재생제품의 규격기준부터 마련해야 함을 알 수가 있다.

이처럼 재활용의 기틀이 마련되지 않은 형편은 폐지 유통과정에서도 두드러진다.

흔히는 『그까짓 폐지…』라고 할지 모르지만,폐지 유통규모는 수입폐지 1백46만톤(2억달러)에,국내 수집 폐지 1백87만톤을 합쳐 한해 3천억원을 바라볼만큼 크고,종사자가 15만명에 이른다.

그러나 이 「폐지산업」이 안고 있는 문제가 만만치 않아서,종이재활용을 어렵게 한다. 무엇보다도 인건비가 올라서,1㎏ 70원씩의 폐지값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다. 3D현상으로 사람을 구할 수도 없다. 그 탓에 난지도의 폐지수집은 이미 2년전에 없어졌다. 폐지수집은 장마철 등에는 할 수가 없고,오래 묵히면 썩어버린다. 그 때문에 안정공급이 안되고 값의 등락이 심하다. 그래서 제지공장은 질좋은 수입폐지를 찾는다. 이를 막자면,폐지단지에 비축시설이 있어야 하나,업계에는 투자여력이 전혀 없다. 폐지수집 업자들이 영세하여,행상­중간상­도매상으로 이어지는 거래가 모두 무기장인데,마지막 제지공장 납품때에는 부가세 세금계산서를 발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세금계산서를 파는 이른바 자료상,딱지상수가 판을 치고,세무사찰로 도산하는 업자가 속출한다. 여기에도 제지공장이 수입폐지를 선호하는 업계의 특성을 들어,부가세 면제를 벌써 5∼6년째 거듭 거듭 진정해왔지만,세무당국은 아직 꿀먹은 벙어리나 같다.

수입품에 밀리고,인건비에 눌리는 이런 형편 속에서,그래도 우리나라 폐지회수율이 43.4%에 이른다는 것은 희안한 일이다. 이 회수율은 일본의 48%보다는 낮지만,미국의 30%는 말할 것도 없고,독일의 41%보다도 높다. 그러나 폐지회수율을 더이상 높이는 일은 「폐지산업」의 구조개편이 앞서고야 가능할 것이 분명하다. 그 방도가 부가세 면제 등의 업계지원,폐지단지·폐지비축 시설의 정부투자 등 유통체계 개선,정부간행물 등 재생종이 수요확대에 있음도 거의 자명하다. 이런 정책들은 조정하고 관장하는 일본의 폐지재생 촉진센터,프랑스의 폐지회수·재생합동위 등도 본받을만 할 것이다.

누구든 자원 재활용이 끽긴함을 모를 사람은 없다. 폐지 1톤을 재생하면 나무 20그루를 아낀 효과가 있고,폐지회수율을 10%올리면,외화가 한해 5천만달러 이상이나 절약된다는 셈도 뻔하다. 그런데도 폐지 재활용이 제대로 안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 해답 역시 뻔한 것 같다. 재활용의 구호가 있고 계획도 있으나,뻔하다면 뻔한 방도의 실천이 안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정부가 먼저 실천 의지를 보이는 일이 급하다. 장관의 명함만이 아니라,대통령의 메모용지도 재생종이를 쓰는 것이다. 부득이 한 경우를 제외한 모든 정부용지와 간행물도 새로 정한 재생규격 종이를 쓰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재활용 마크를 표시한다. 이만한 결심만 있다면,몇백억원이면 족할 「폐지산업」 진흥이 안될 까닭이 없고,국민들 사이에서 검약·재활용 기풍이 일지 않을 까닭 또한 없으리라 생각한다.<상임고문·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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