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때 포로감시원 끌려가 “유죄”/“일 대신한 고통 외면당해/전후처리 깨끗이 매듭을”【동경=문창재특파원】 한국인 「전범」 출신자들이 12일 일본 정부를 상대로 공식사죄와 보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재일한국인 전범출신자 모임인 동진회,문태복회장(69) 등 회원 5명과 유가족 변광수씨(50·충북 진천농고 교사) 등 7명은 이날 상오 10시 동경지방 재판소 민사부에 2백50여쪽 분량의 소장을 제출했다. 이들이 소장을 제출하는 자리에는 이마무라·츠구오(금촌사부) 변호사 등 자원변호인단 5명과 이 재판을 지원하는 시민단체회원 보도진 등 40여명이 입회,이들의 법정 투쟁을 후원했다.
이들은 소장에서 ▲미야자와(궁택희일) 일본 총리는 원고 개개인에게 일본의 전후책임을 대신해 복역한데 대한 사죄문을 교부해주고 ▲사형당한 사람에게 1인당 5천만엔 ▲복역자에게는 복역기간 1일당 5천엔씩의 보상금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소장을 제출한뒤 일본법조기자 클럽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회장 문씨는 『35년간의 보상투쟁이 법정으로까지 이어진 것은 정말 유감』이라면서 『이번 재판의 원고가 된 사람은 7명뿐이지만 태평양전쟁 전범의 누명을 쓴 1백48명 전원이 이번 소송의 원고』라고 밝혔다. 그는 연합군 군사재판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23명과 스가모(소압) 형무소에서 가석방된뒤 생활고로 자살한 동포 2명의 원한을 달래기 위해서도 살아있는 동지들이 끝까지 투쟁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소송제기 이유를 설명한뒤 『국제국가를 지향한다는 일본이 일본을 대신해 죽고 고통받은 사람들의 보상요구를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온 유가족 변씨는 자신이 전범으로 몰려 자바에서 총살형을 당한 변종윤씨(당시 29세)의 유일한 혈육임을 밝힌 뒤 『본인처럼 애통하고 불행한 사람이 생겨난 것은 한·일 관계사의 비극 때문』이라면서 『다시는 한국인 피해자들이 일본의 법정에서는 일이 없도록 일본 사법당국이 공정하게 판단해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자원변호사 이마무라씨는 전쟁책임에 대해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맹목이다』라는 바이체커 독일 대통령의 연설문을 상기시키며 『이 재판을 지원하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일본의 전후처리가 깨끗이 매듭지어 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은 동남아 각지에 있던 일본의 연합군 포로수용소 감시요원으로 끌려갔다가 일본의 패전후 연합군 군사재판에서 B·C급 전범으로 기소당해 유죄판결을 받을 사람들.
한국인으로서 연합군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전범은 모두 1백48명 이었는데,이중 1백29명이 포로수용소 감시요원으로 근무했던 비전투 요원들이었다. 기아와 질병과 중노동속에서 많은 연합군 포로들이 죽어간 책임이 감시원들에게만 지워진 것이었다.
1백29명중 23명은 현지에서 총살형을 당했고 나머지는 싱가포르의 창기형무소에서 동경 스가모형무소로 이감돼 52∼56년 사이에 개별적으로 가석방됐다. 이른바 동경 재판이라 불린 연합국 군사재판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일본의 A급 전범은 7명에 불과했는데도 B·C급으로 분류된 한국인 전범은 23명이나 처형당한 것이 지금도 형평의 원칙에 크게 위배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일본 국민의 일원으로서 포로를 학대했다는 이유로 일본 감옥에 이들을 수용했던 일본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조약에 따라 재일한국인들의 일본 국적을 일방적으로 박탈한 후에도 『원인행위 당시 일본 국적이었다』는 논리로 이들의 일제석방을 거부했었다. 그후 56년까지 5년동안 개별적으로 가석방시킨 후에는 일본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원호혜택과 보상을 거부했다.
석방자 70여명은 1965년 동진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생활보장 국가배상 유골송환을 요구하는 운동을 시작했지만 일본정부는 『65년 한·일 협정에 따라 보상의무는 소멸됐으며,외국 국적자에 대한 보상 및 원호혜택의 근거법이 없다』는 똑같은 주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동진회 회원들은 석방후 『일본의 전쟁수행에 협조했다』는 냉대때문에 귀국을 단념해야 했으며,북한 출신자들은 일본과의 국교가 없기 때문에 귀국길마저 막힌채 일본땅에 뿌리내릴 수 밖에 없었다. 현재 회원수는 30여명이지만 생활고로 인한 자살(2명),정신병원 입원중 사망 등으로 회원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