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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생존전략/오인환(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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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생존전략/오인환(조망)

입력
1991.1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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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체제 아래서 일본만큼 오랫동안 반사이익을 챙긴 나라도 없다. 2차대전 종전을 전후해 소련이 맞수로서 급부상하게 되자 짧은 기간동안 유일한 초강대국이라는 꿈을 즐겨보았던 미국은 전세계적인 대소견제에 나서게 된다. 이에 따라 일본은 아시아의 대소방어센터라는 전략적이익을 미국에 제공하고 대신 미의 핵우산이 지켜주는 5대양을 누비며 원자재를 들여다 상품을 만들어 미국시장을 마음놓고 공략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은 한국전쟁,베트남전쟁 등 냉전갈등 기간에 찾아온 특수경기를 통해 경제대국으로서의 터전을 다질 수 있었다. 그러나 소련제국이 붕괴되면서 사정은 바뀌게 되었다.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실되기 시작하면서 미국은 더이상 일본상품을 일방적으로 사야하는 봉노릇을 감내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미국인이 아직 군복을 입고 있을때 일찌감치 공장과 회사로 돌아가 돈벌이에 들어간 얌체경쟁 상대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그런점에서 부시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방일일정을 취소한 조처는 미·일간의 새로운 역학관계를 비치는 장면같아 보였다. 낭패를 당한 것 같은 일본 조야의 표정을 보면 그러했다. 미국경제의 침체가 심화되고 외교 밖에 모르는 대통령이라는 거센 비난때문에 갑자기 방문을 연기케 됐다고 하지만 그만 정도의 사태에 미국의 정상외교가 흔들리리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어서 부시의 그같은 결정의 밑바닥에는 일본을 경시하는 분위기가 작용한 때문이 아닐까라고 짚어 볼 수가 있을 것이며,미국과는 달리 아직도 상대가 크게 아쉬운 처지인 일본으로서는 보기보다 큰 충격을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소련의 몰락은 다른 한편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다. 동북아시아에서의 첫 변화는 주한미군의 핵철수와 미국의 대베트남 접근이다. 군사전략면에서 한쪽은 퇴조의 시작일 수 있고,통상전략면에서 다른 한쪽은 교류의 시작인 것이다. 엔블록화의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미국이 일본의 동아시아 경제권구상(EAEG) 참여를 저지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에서 예사롭지 않다.

○미·일 경제갈등 심화

소련이 초강대국의 지위를 포기한 뒤의 미·일관계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부시의 재선전망을 어둡게 할 정도로 경제사정이 악화된 미국은 통상전쟁,경제전쟁으로 대전환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결국 미국과 일본은 경제패권을 놓고 충돌,새로운 전쟁을 벌이게 될지도 모른다는 시나리오로 일본사회에 큰 화제를 모았다던 「일본과의 전쟁」(The Coming War With Japan)이라는 책은 그런점에서 당분간 매우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해준 것으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또다시 태평양전쟁을 치를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가겠느냐는 극단론을 배제해놓고 보더라도,지금의 미·일 갈등구조가 태평양전쟁전과 비슷한 상황이 많고 양국의 경제갈등이 더 깊어가리라는 점에서 양국충돌의 요인을 총체적으로 짚은 의미는 과소평가하기가 어렵다.

「일본과의 전쟁」의 요지는 분명하고 간단하다. 궁극적으로 통상전쟁의 영향으로 일본이 미국시장에서 물러나오게 되고 EC통합에 따라 유럽시장에서도 발붙이기 어렵게 될때 일본은 인도에서 동남아를 거쳐 중국으로 이어지는 방대한 아시아시장 공략에 주력하게 되리라는 것. 이 시장을 확보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정치대국으로 발돋움 해야하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군사대국화로 가지않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예측인 것이다. 결국 원하든 원치않든간에 서태평양의 패자를 노리게 되는 일본은 미국의 이익과 부딪쳐 다시한번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게 시나리오의 줄기이다. 미국민들의 다수가 일본의 경제진출에 반감을 표시,반일무드가 깊게 형성되고 있고 이미 일본이 동남아에 깊이 진출,시장점유의 이니셔티브를 잡고있는 잠재력 등으로 미뤄볼때 양국의 이익이 도처에서 본격적으로 맞부딪치게 되는것은 시간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백년대계 시급

그러나 주목해야할 점은 미·일간의 암투에서 새우등이 터지는 쪽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강건너 불보듯 하고 있는 서글픈 현실이다.

지정학적으로 볼때 일본의 국가 기본전략은 자국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동해와 남지나해를 관장해야 하며 그 바다를 위협하는 한국,대만 등 육지를 제압하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과 정면으로 상충하는 것은 역사가 실증한다. 통상전쟁에서도 이 원칙은 통한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은 다정하게 한국과 시장을 나눌 상대가 아닌 것이다. 더구나 구조적으로 볼때 일본이 미국시장에서 고전하게 되면 한국은 더욱 어려워지는 입장이고,일본이 EC에서 어려워지면 우리는 더욱 힘들게 돼있다. 한국은 세계시장 곳곳에서 일본의 뒤를 따라가나 그 벽을 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은 기술개발력과 상품의 질,가격을 가지고는 일본과의 격차는 더욱 커질수 밖에 없다. 통상전쟁에서 우리가 살아남으려면 일본의 잠재시장을 잠식할 수 있어야 하는데,지금 우리 형편은 우리의 기존시장을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뒷받침하는 아세안국가에게 오히려 추월당하는 처지에 와 있는 것이다.

소련의 후퇴로 가속되기 시작할 태평양지역 개편의 소용돌이속에서 우리는 독자적인 생존전략을 짜가지 않으면 안된다. 통상에 관한한 미국도 믿을데가 없다. 대권경쟁에 영일이 없고 수출부진,과소비로 정신이 없어 이같은 국가의 백년대계가 소홀히 다루어지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금 시중에는 다음 정부가 들어설때쯤 남미형의 경제파탄이 오는 것이 아니냐는 비관론이 퍼져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 북쪽만 바라보고 있다.<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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