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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옹호 앞장선 참여파 예술인/9일 사망 불 이브 몽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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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옹호 앞장선 참여파 예술인/9일 사망 불 이브 몽탕

입력
1991.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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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 불러 유명… 배우로도 성공/소 쿠데타땐 민중지원 모임결성【파리=김영환특파원】 세계적인 가수이자 영화배우이며 인권운동가인 이브 몽탕이 9일 하오 심근경색으로 파리교외의 상리병원서 별세했다. 향년 70세.

몽탕은 최근 와즈지방에서 장 자크 베이넥스 감독의 영화에 출현하고 있었으며 92년 5월에는 파리에서 리사이틀을 가질 예정이었다.

몽탕은 「고엽」(les feuilles mortes)처럼 전세계에 애창되는 주옥같은 샹송뿐 아니라 「공포의 보수」(le salaire de la peur)와 같은 불멸의 영화를 남기기도 했다.

몽탕은 참여파 예술인으로서 인권옹호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89년엔 중국의 천안문 사태를 규탄하면서 학생들에게 연대감을 표시했고 지난 8월의 소련 쿠데타에는 자크 랑 문화장관과 함께 신속하게 소련내의 인권을 위한 단체를 결성하기도 했다.

몽탕은 1921년 이보리비란 이름으로 이탈리아의 토스칸지방에서 태어났으나 30년대 파시즘이 이탈리아를 휩쓸자 12세때 일가가 프랑스로 이민,마르세유에 정착했다. 파리가 해방된 뒤 신인 몽탕은 46년 영화 「밤의 문」의 주제곡으로 사용된 고엽을 부르는 행운을 얻어 매우 유명해졌다.

몽탕은 51년 영화감독의 딸인 시몬 시뇨레와 결혼,시뇨레가 죽을때까지 35년간 함께 살았다.

몽탕은 50여편의 영화에 출연,마릴린 몬로,카트린 드뇌브,이자벨 마자니,로미 슈나이더,시몬 시뇨레 등과 공연했다. 그는 수년전 카롤 아미엘과 재혼,3살반의 아들을 자랑하고 있다.

그에 대한 애도는 그의 행동철학을 반영하듯 정치인들에게서 먼저 나왔다. 지스카르데스탱 전 대통령은 위대한 재능의 사라짐을 슬퍼했고 자크랑 문화장관은 『그는 뼈속까지 프랑스인이자 세계인이 었다』고 추도하면서 『인생과 예술의 진정한 투사가 갑자기 쓰러져 우리의 삶도 이렇게 한 페이지가 떨어져 나갔다』고 덧붙였다. 조르주 마르세 공산당 당수는 『그의 노래의 내용을 우파들이 비판할때 우리는 옹호했으나 이후 그와 공산당과의 관계는 악화됐다』면서 자신은 예나지금이나 그의 노래를 기쁘게 듣는다고 술회했다.

몽탕은 『시인들이 사라진 오래 오래 뒤에도 그들의 노래는 여전히 거리에 흐를 것』이라고 「시인의 혼」이란 샹송에서 노래했었다. 그 또한 이제 시인처럼 사라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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