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여름 일본에서 점심으로 장어덮밥을 먹으러 간 일이 있다. 장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나라처럼 한관이나 반관을 먹었다가는 월급봉투 거덜나기 십상이다. 덮밥에는 장어 두토막이 밥위에 덩그러니 올라앉아 있을 뿐이다.일본사람들은 삼복더위에 민물장어를 많이 먹는다. 우리가 보신탕을 먹는 것처럼 그들은 여름이면 체력유지의 한 지혜로 민물장어를 즐겨 먹는 것이다. 장어는 바로 일본사람들의 보신탕이라고 할 수 있다.
장어덮밥을 먹으며 식당에 비치된 TV를 보니 묘하게도 장어양식에 대한 프로가 방영되고 있었다. 양식방법과 영양가를 전반적으로 소개했다. 민물장어를 많이 먹는 때라 이에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 적절한 프로로 생각됐다.
징그러울 정도로 새까맣게 한덩어리가 돼 꿈틀거리는 장어를 중점적으로 떠올리던 화면이 바뀌어 양식장 전경이 화면을 채웠다. 물탱크 같은 여러개의 원형탑이 나타났고 그 아래쪽에 양식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바로 원자력발전소였다. 안내자는 친절하게도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냉각수로 장어를 양식하고 있으며 현재 원자력발전소에서 양식하는 장어가 양식장어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냉각수는 장어를 양식하기에 알맞을 정도로 따뜻해 장어가 더욱 잘자란다는 해설까지 곁들였다.
장어덮밥을 먹고 있던 기자는 물론 몇몇 일본사람들도 엉겁결에 「어」하는 소리를 냈다. 솔직히 먹고 있던 장어덮밥 맛이 뚝떨어지는 기분이었다.
2차대전때 두발의 원자탄세례를 받은 일본국민은 원자력에 대해 신경질적이라고 할만큼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이러한 일본에서 국민들이 즐겨 먹는 장어를 원자력발전소의 냉각수로 양식하고 있을 줄은 일본사람들도 몰랐던 것 같았다. 바로 원자력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려는 교묘한 노림이 이 프로속에 숨어 있었다.
그 당시 TV를 보고 장어덮밥 먹는 것을 중단한 사람은 없었다. 그뒤 원자력발전소의 장어양식이 중단됐다는 보도도 없었다. 그곳에서 양식한 뱀장어를 시중에 내다 판다고 항의데모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다.
정부는 지난해 안면도 파동을 겪은후 핵폐기물처리장 부지선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궁여지책으로 지난 5일까지 자원신청을 공모,44곳이 이에 응했으나 전망은 밝은 편이 아니다. 대상후보지를 몇곳으로 축소하기도 전에 몇몇 지역은 벌써부터 공기가 심상치 않다. 자칫 신청지역과 신청자의 이름이 밝혀지면 주민들간의 불화로 번질 가능성도 있어 이의 보안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처럼 공모해야할 만큼 핵폐기물처리장 부지선정이 허공을 맴돌자 「NIMBY」(Not In My Back Yard) 현상을 비판하는 소리도 높다. 「우리 뒤뜰만은 안된다」는 이기주의는 비판받아야 한다고 하지만,우리나라의 경우 생활을 지키려는 주민들만 나무랄 수도 없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생활과 재산이 침해돼도 공권력에 눌려 말한마디 못했다. 집이 도시계획에 걸려 몇푼 받지도 못하고 쫓겨나는 예를 수 없이 보았다. 그나마 자기재산·생활을 지키겠다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주민들만을 나무라고 힘에 의지해서는 안된다. 평소의 노력과 인내를 갖고 설득·타협하는 길밖에 없다. 요즘 갑자기 원자력에 대한 광고·세미나,이의 이해를 촉구하는 편지 및 과기처장관의 지방순회설명 등이 이어지는 것을 보며 설득과 타협의 중요성을 더욱 느낀다. 원전 냉각수로 양식한 장어의 덮밥은 현재상황에서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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