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핵전략 논쟁에 일단 매듭이 지어졌다. 노태우대통령의 「비핵화선언」은 그동안의 논쟁경위로 봐서 자칫 과소평가될 수도 있을지 모르나,어쨌든 탈냉전의 흐름이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친 첫 구체적 결정임엔 틀림이 없다. 우리측의 비핵화선언이 과소평가될 수 있다는 것은 그것이 북측의 핵사찰을 유도하기 위한 대응책으로 나왔다는 면만을 강조하는 평가를 가리킨다. 물론 비핵화선언의 당면한 목표가 북측의 핵사찰 거부를 봉쇄하는데 있음을 부인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핵무기의 제조·보유·저장·배비·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북측도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북측이 국제원자려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아들임으로써 핵확산 금지조약 조인국으로서 공약한 의무를 규정대로 지키는 과정만이 남아있다.소련은 이미 사실상 남북한에 대해 「전략적 등거리정책」으로 노선을 바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사실상 북측의 동맹국인 중국도 평양의 핵무기 개발에 반대하고,핵사찰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비핵화선언까지도 거부한다면,북한은 보다 가혹한 세계적 압력에 직면할 것이 확실하다. 슐레진저,브라운 등 전직 각료나 닉시 등 미국학자들이 무력사용을 제안하고 있는 것도 대북 강경책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위해 군사력까지 동원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북으로서도 더 이상의 강경압력을 받고서야 핵사찰을 받아들이기 보다는,이성적인 국제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상식적인 대응을 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북한측이 주장하는 「비핵지대화 공동선언」은 세계 열강의 핵 및 비핵군사력이 밀집해있는 한반도의 상황에서 실현불가능한 선전구호일 뿐이다. 주변 핵강국과의 신뢰성있는 합의를 전제로 해야하기 때문이다. 북측이 주장하는 미국의 「핵우산」은 이데올로기 대결이 청산되는 현 상황에서 군사적이라기 보다는 정치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북측이 핵사찰을 거부할 구실로 삼을 연계조건이 될수 없다. 아직은 우리의 비핵화선언이 한국의 전략구조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유럽에서 실현된 것과 비슷한 탈냉전구조의 여건이 한발짝 앞섰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긴 눈으로 대결구조 해체에 대비하는 전략구상을 발전시켜야 될것이다. 동시에 보다 발전되고 세련된 정치가 요구되는 시대에 접근하고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